[단독] 유리원판 흑백 필름에 담긴 ‘고흐’ 그림 최초 공개
[단독] 유리원판 흑백 필름에 담긴 ‘고흐’ 그림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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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gh, Vincent van, 1853-90. Portrait of the artist. Paris. Coll, Bernheim Ieune. 반 고흐 (1853-90). 자화상. (제작 당시) 파리 Bernheim-Jeune 갤러리 소장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 Gogh, Vincent van, 1853-90. The chair and the pipe. London. Tate Gallery.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1853-90). 의자와 파이프. (제작 당시)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피카소보다 더 알아주는 작가
채색 원본 흑백필름에 담아
생전 단 4점의 작품만 팔아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약 10년간의 짧은 화가 일생을 살다가 요절했지만 폴 고갱, 폴 세잔과 함께 19세기 최고의 화가로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네덜란드, 1853-1890). 그의 작품이 유리원판 흑백필름에 담겨 보관돼 오다가 최초로 공개됐다.

본지는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으로부터 유리원판 흑백필름에 담긴 고흐의 작품 2점을 입수했다. 고흐의 자화상, 의자와 그 위에 놓여 있는 파이프 그림의 사물화다. 피카소의 그림이 선이 날카롭다면 고흐의 그림은 다소 부드러운 선의 움직임이 매료를 느끼게 한다.

유리원판 필름에 담긴 피카소와 고흐 작품은 대부분 흑백이다. 원본은 채색된 작품이었지만 흑백 필름 그대로 담았기 때문에 채색이 거의 없다. 성화 작품은 대체로 홍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원본 그대로 채색된 것이 많다. 그러나 피카소나 고흐 작품은 이 같은 용도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채색된 그림을 흑백필름으로 찍어서 남긴 것이다. 정성길 관장이 수집한 약 70점의 고흐 작품 중에서 채색된 작품은 2~3점밖에 되지 않는다.

흑백 필름보다도 채색된 필름은 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유리원판 컬러 필름 기법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 필름은 감광도가 매우 낮은 건판으로 0.2mm 유리판에 감광재료를 바른 후 젤라틴 막을 입혀 촬영하면 실상과 반대인 네거티브(음화)로 찍혀지고 이것을 다시 실상과 같은 포지티브(양화)로 반전시킨 후 그 위에 원색에 가까운 칠을 해 컬러 유리 원판으로 만들었다.

쉽게 말하면 현품을 찍어 나온 유리로 된 흑백필름에 붓으로 색을 칠했고, 그 위에 유리를 덧씌워 ‘샌드위치형’으로 만든 것이다. 이 컬러 유리원판 필름에는 고흐, 피카소 등의 명화 작품뿐 아니라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렘브란트 거장들의 성화 작품이 들어가 있는데, 현품과 워낙 흡사하게 제작돼 현시대에는 미스터리 기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 관장은 “고흐의 채색된 작품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채색한 것이고, 나머지는 당시 19세기 초기 흑백필름 시대이다 보니 원본 컬러 그림이 흑백으로 나타난 것”이라며 “이는 마치 옛날 흑백 졸업사진처럼 아련함과 진실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흑백필름에 담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을 표현했다.

정 관장은 “피카소는 상품화하기 위해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고흐는 일생에 단 4점의 작품만 팔았다. 귀를 자른 후 이를 치료해주던 의사가 위로 차원으로 2점을 사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관장은 “고흐의 그림은 생전 당시 인기가 없었으나, 고흐의 철학이 후대에 대단한 것임이 알려지면서 현재는 오히려 피카소보다 더 알아준다. 황소 그림을 그렸던 이중섭도 생전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은 비화들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인기를 모았다”고 설명했다.

고흐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영향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종교적인 가치를 추구했다. 젊은 시절 외국에 나가 화랑에서 일하면서 그림을 접했지만, 고향에 돌아와 목사의 꿈을 갖고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1880년 27세에 노동자 계급을 그리는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진로를 바꾼다.

이후 고흐는 10년간의 화가의 인생을 사는 동안 86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이는 일주일에 2개의 작품을 그린 셈이었다. 성격차이로 인해 고갱과 자주 싸웠던 고흐는 결국 다투고 난 뒤 격분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우울증에 시달려 치료를 받으면서도 작품 활동은 계속했다. 이 때문인지 고흐는 유독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였다.

정 관장은 “앞서 얘기했듯이 고흐의 작품은 피카소보다 더 굉장히 알아준다. 이번에 공개된 작품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소실됐는지 혹은 계속 잘 소장이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유리원판 흑백필름으로 보여진다는 점에서 고흐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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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2014-12-26 22:10:31
자기 귀를 잘라버리고 자화상을 그린 그 화가... 예술적 감각을 가진분 같아요. 귀한 그림 감사합니다.

binmam 2014-12-26 14:31:40
음..반 고흐..자세히 보니 성격만큼이나 날카롭게 생겼네요 정관장님 덕분에 이렇게
귀한 작품을 접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