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구로구 대림역 부근에는 각종 중국음식과 중국어 간판이 즐비하다. 평소라면 많은 사람들이 왕래했을 거리지만 지난달 발생한 박춘봉 살인사건 이후 중국 동포들은 경색된 모습을 보였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제2의 박춘봉 나올 듯”
내국인 시선 악화돼
조선족도 당혹감 표출


“박씨 때문에 욕 먹어”
차별적 시선에 좌절감
동포 전체 문제 아냐

수원 토막살인, 조선족에도 파장… 연변거리 ‘냉기’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일명 ‘연변거리’로 불리는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 지하철 7호선 남 구로역 3번 출구로 나오면 출구에서부터 한자어로 된 간판과 현수막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중국어와 길거리의 중국 음식이 여행을 온 듯 착각하게 했다. 평소라면 활기찼을 거리지만 지난 22일 찾은 연변거리는 추운 날씨만큼 길을 걷는 사람들도 경색된 모습이었다.

지난달 26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한 주택에서 중국국적의 불법체류자 박춘봉의 토막살인 사건은 중국 동포 사회에도 큰 충격을 줬다. 2년 전 오원춘 사건 때처럼 많은 사람으로부터 중국 동포라는 이유만으로 경멸의 눈빛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구로역 근처 아파트에 사는 김진수(가명, 67, 남) 씨는 “중국 동포 때문에 무서워 살 수가 없다”며 “박춘봉 현장 검증 기자를 보니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다. 제2의 박춘봉, 제2의 오원춘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분노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중국 동포들은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기자를 경계했다. 일상대화를 하다가도 기자의 신분을 밝히면 입을 닫고 슬그머니 사라지기 일쑤였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고 질문하자 아예 대답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어렵게 말을 꺼낸 이들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중국 동포 관련 살인사건이 어려운 생계를 위해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중국 동포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전양자(가명, 55, 여) 씨는 “세상에 그런 일(박춘봉 사건)이 발생하냐. 정말 끔찍한 일”이라면서 “다 같은 동포인데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어떻게 믿고 사느냐”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전 씨는 “일부 그런 사람들이 문제다. 분명히 여기 와서 쉽게 만나 동거했을 것”이라며 “앞으로 이 같은 사건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리봉동에 산다는 중국 출신 한길남(72, 남) 씨는 “박 씨 때문에 우리까지 욕을 먹고 있다”며 “중국에선 저런 사람들 그냥 총으로 쏴 죽인다. 여기서도 그래야 해”라며 화를 냈다.

중국 동포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찾는 대림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몇 명의 그릇된 생각과 행동으로 70만여명의 중국 동포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우려다.

구인광고를 보고 있던 정춘식(가명, 68, 남) 씨는 “대부분 불법 체류하는 동포들이 사고를 많이 낸다”며 “중국 동포의 입국을 허가할 때 그 사람이 범죄 경력이 있는지 등을 검사해 체류 관리를 강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년층도 비슷한 생각이다. 김미영(30, 여) 씨는 “박춘봉 사건은 다신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라며 “하지만 모든 나쁜 사건을 중국 동포가 일으킨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우리(중국 동포)도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좋은 시선으로 서로가 배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국동포복지연구소 정송 소장은 “중국에서 한국인의 혼을 이어왔고 남북통일 되더라도 우리의 힘이 필요한데도 외국인 취급하고 있다”며 “오원춘, 박춘봉 등의 사건은 불법 체류자들의 문제다. 단면을 가지고 중국 동포 전체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정 소장은 “불법체류자들이 들어옴과 동시에 문제를 발생한다. 일반 비자로 들어온 사람들은 싸움만 해도 추방하기 때문에 무서워서 사고를 못 친다”며 “불법체류자를 해결하지 않고는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적대적인 사회의 시선과 차별에 좌절감을 느낀다. 일본이나 미국사람은 존중하면서 같은 민족인 중국 동포는 범죄자 취급한다”며 “이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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