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서울 효창공원 윤봉길의사 묘역에서 진행된 순국 82주기 추모식에서 나종화 광복회 이사가 헌화를 한 뒤 묵념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지난 19일은 매헌 윤봉길(1908. 6. 21-1932. 12. 19) 의사가 순국한 지 82주기를 맞이한 날이었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윤봉길의사 묘역에서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를 비롯해 월진회, 광복회, 이봉창의사생가복원추진위원회 등 많은 민족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순국 제82주기 추모식이 진행됐다. 며칠간 지속됐던 한파도 윤 의사의 숭고한 순국 앞에선 잠시 수그러졌는지 날씨는 다소 따사로웠다.

1932년 4월 26일 상하이(상해) 홍커우공원서 열린 일본의 천장절과 상하이 점령 전승기념 축하식에서 윤봉길 의사는 단상에 수통형 폭탄을 투척해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을 비롯한 여럿 일본군 장교와 고관을 처단했다.

“4억 중국인도 100만 대군도 해내지 못한 위대한 일을 조선인 한 청년이 해냈다”고 당시 중국 장계석 총통이 극찬할 정도로 윤 의사의 상해 의거는 위대한 쾌거였다. 우리 민족뿐 아니라 일본의 승전 기념행사를 치욕스럽게 지켜봐야 했던 중국인들에게도 통쾌하기 그지없었던 의거였던 것.

거사 성공 후 들고 있던 나머지 1개의 폭탄으로 자결을 시도하려 했으나 실패한 윤 의사는 일본 헌병에게 구타를 당하며 체포됐고, 가혹한 심문과 고문을 받은 뒤 5월 28일 상해파견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11월 20일 일본 오사카로 호송돼 육군 형무소에 수감되다가 12월 18일 가나자와 육군구금소로 이감된 뒤 다음날 오전 7시 40분 육군공병작업장에서 쌀쌀한 기운을 마시며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해방 후 유해봉환단에 의해 발굴된 뒤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조국으로 봉환된 윤 의사의 유해는 국민장으로 효창공원 의사묘역에 안장됐다.

이날 황의만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은 “일제는 윤 의사를 악랄한 행위라고 판단해 총살시켰지만, 그 분의 희생은 거룩한 순국이었고, 동양평화를 위해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인 것”이라며 “82년이나 흘렀지만 윤 의사의 의로운 죽음이 후손들에게 뜨거운 겨레사랑 정신이 돼 어려울 때 민족의 등불이 돼 줄 것이라 믿는다”고 뜨거운 추모의 사랑을 보냈다.

안중현 국가보훈처 서울보훈청장 역시 “윤 의사는 농촌계몽운동과 월진회를 설립해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다. 역사에 기리 남을 장거를 이룬 25살 청년의 숭고한 정신이 민족혼의 밑거름이 돼 세계 속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으로 우뚝 섰다”며 윤 의사를 높게 평가했다.

헌화와 분향이 진행된 뒤 특별히 역사어린이합창단이 추모가로 ‘윤봉길의사의 노래’를 부르면서 태극기를 흔들어 추모 분위기를 더욱 고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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