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개구리론’이라는 이론이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 Company : GE) 전 회장인 잭 웰치의 위기활용 리더십에서 나온 이 말은 경제계에서 자주 인용돼온 말이다. 내용인즉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즉시 튀어나와 살아나지만, 찬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해 물을 데우면 개구리가 물이 뜨거워지는지 깨닫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된다’는 내용이다. 잭 웰치는 경영 위기 때마다 ‘개구리론’을 설파해 기업을 재탄생시킨 주인공으로서 유명세를 탔다.

그 후 이 말은 세계로 전파돼 우리 정부나 정치집단에서도 인용했다.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지난해 한 외국계 전문기관(맥킨지)은 한국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로 비유하면서 특단의 개혁조치 없이는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며 소개했고,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한국 경제의 구조적 어려움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점점 뜨거워지는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 둔감하게 지내다 벼랑 끝에 몰리는 것이 아닌지 두렵다”는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비단 경제계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등 여러 면에서 변화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면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 죽게 될지 모른다는 이론을 내세운 변화 시도가 많은데 반향(反響)이 크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변화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많은 변화를 해야 할 분야는 국민안전 분야로 각종 위험으로부터의 탈피다. 이는 가장 요긴한 국민욕구였으니 지금까지는 먹고사는 게 우선이라 잊고 살았지만 지난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생활에 가장 크게 다가온 과제였다.

국민안전을 위한 국가와 사회개조론이 꾸준히 일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사회변화의 원천을 이루는 정치 변화가 우선이라 할 수 있다. 서민생활이 힘들고 경제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수록 여야가 힘을 합쳐 정부정책을 감시하고 국민이 편하게 살아가도록 고심하고 또 고심해야 하건만 위정자들에게는 고민의 흔적들이 없다. 그런 입장이니 국민은 여당을 그러려니 생각하고 야당을 대안정당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정치에 관해 무관심을 보이게 마련이다.

국민 여론이 최근 실시된 12월 정당지지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새누리당은 11월말 지지도 41.9%포인트에서 하락해 36.7%를 기록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5개월 만에 20%대를 돌파해 20.2%를 보였다. 하지만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파문이 연말정국을 강타하면서 박 대통령 지지도가 30%대로 하락되는 등 정부·여당의 아킬레스건들이 있었지만 제1야당은 당권경쟁을 앞두고 집안싸움이 재연될 조짐이니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가 국민 불신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여야가 각성해 정치의 장(場)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국민이 원하고 있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국민은 정치에 무관심을 보일 테고 그렇게 된다면 새누리당보다는 새정치연합이 훨씬 데미지를 입는다는 사실을 제1야당은 깨달아야 한다. 그 교훈이 바로 12월 14일 치러진 일본 총선에서 나타난 결과다. 일본 아사히신문 조사 결과에 의하면 11월 하순에 아베 내각 지지율은 39%까지 떨어졌지만 보수 연립여당에 대한 기대보다는 야당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더 크게 드러나 자민당의 압승으로 귀결됐던 것이다.

12.14 일본 총선 투표율 52.66%는 사상최저치라 한다. 지금까지 최저였던 2012년 총선의 59.32%보다도 더 떨어진 것이다. 일본 언론이 전하는 바는 투표율이 엄청 떨어졌다는 것은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극에 달했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일본 유권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에 찾지 않은 이유는 자민당이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대안 세력이라는 믿음을 일본인들에게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우리 정치 현장에서 야당이 마치 일본의 사정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현상 유지만 해도 본전(本錢)은 건진다는 새누리당의 여유작작함에 비해 국정을 견제하면서 국민에게 다가설 기회가 새정치연합에 많건만 하는 일마다 정부·여당에 대해 꼬투리잡기와 정쟁(政爭), 당내 계파 간의 이익을 따지는 판국이니 대도(大道)가 실종된 지 오래다. 게다가 내년 2월 8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실세들은 칼자루 쥐기에 바쁜 지금이다.

통합진보당의 소멸로 인해 정국의 후폭풍이 예견되지만, 여론조사 응답자의 70.4%가 ‘비선실세들의 국정 개입과 권력 암투가 실제로 있었을 것’이라 응답하고 있는 현실은 제1야당이 다시 한번 몸을 추스르고 국민에게 다가설 수 있는 호기다. 그럼에도 당내 특정 계파의 특권적 생각을 청산하지 못해 우물 안 개구리 건성을 보이거나, ‘개구리론’ 같은 우(愚)를 범한다면 대안정당의 기치는 없어질 것이다. 국민 믿음을 얻으려면 야당은 각성하고 더욱 분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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