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영등포구 관내 자활시설인들이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아트홀에서 열린 ‘자활시설인과 함께하는 어울림 한마당’에서 장기자랑을 보여주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거리 전전했던 박씨
남 도우며 자활 의지
“보람되게 살고 싶어”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지난 10여년간 노숙 생활을 해온 박호인(52)씨에겐 작은 꿈이 있다. 스스로 돈을 벌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남들에게 적게나마 도움을 주는 것. 그가 지게차 운전을 목표로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도 비록 집 없이 떠돌면서 어렵게 살아왔지만, 남을 도우면서 삶의 희망이 생겼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제 노숙 생활을 접어야죠. 먹여주고 재워주는 생활에 안주하다 보니 비전이 자꾸 없어져요. 나이도 50이 넘었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죠.”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아트홀에서 열린 ‘자활시설인과 함께하는 어울림 한마당’에서 만난 그의 얼굴엔 생동감이 흘렀다. 노란 색의 자원봉사 유니폼을 입은 그는 자리 안내를 하느라 분주했다.

400명이 정원인 홀은 어느덧 빈자리 없이 가득 들어찼다. 자활시설인은 길거리 노숙인과 달리 자활 의지를 갖고 사회복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한껏 들뜬 표정으로 행사 시작을 기다렸다. 동료를 바라보던 박 씨의 머릿속엔 자신의 과거 생각이 떠올랐다.

“아내와 이혼하고 나서 맨날 술 먹고 알콜중독에 걸려서 정신병원에 가기도 했고, 아무 데서나 잤어요. 10년 전부터 그랬죠.”

그도 한때는 한 가정을 책임진 어엿한 가장이었다. 시골서 양계장을 꾸렸다가 전염병이 돌면서 모든 걸 잃었다. 정부 보상도 없던 시기였다. 돈 빌려 사료값을 대던 상황이라 차압이 들어오면서 순식간에 알거지가 됐다. 설상가상 아내마저도 이혼을 요구했다. 그는 자기 때문에 아내가 고생한다는 생각에 군말 없이 이혼도장을 찍어줬다. 남은 재산도 모두 털어 아내에게 넘겼다. 동네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미친놈”이라고 했다. 어떻게 돈 한 푼 안 남기고 다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이도 젊고 하니까 뭐든 할 줄 알았죠. 그런데 술에 한번 빠지니까 헤어나올 수가 없더군요.”

그렇게 수년을 전전하면서 막노동으로 연명하다 보니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8년 전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고, 최근엔 목디스크 수술도 무료로 했다.

이대로 살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뭐든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길거리 풍찬노숙을 접고 시골의 한 교회에 들어갔다. 밥을 얻어먹으면서 4~5년 동안 봉사에 전념했다. 어려운 이를 돕는 봉사를 하다 보니 걸리는 게 돈이었다. 담배나 옷이라도 하나 사주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서울로 상경했다. 올해 9월 보현의집에 입소한 그는 진로상담을 받고 지게차 운전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삼았다. 내년 지게차 학원에 등록해 배울 예정이다.

“여기서 잘되면 남에게 보람 되게 살아보고 싶어요. 그게 꿈이에요. 지금은 몸으로 때우는 것밖에 못하는데, 돈 벌면 물질적인 도움도 작지만, 할 수 있어요.”

길거리엔 자활 의지가 사라진 노숙인들이 아직도 많다. 박씨는 그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주체하기 어렵다. 그와 같이 노숙했던 친구 한 명도 술 먹고 자다가 동사했다. 박씨는 자신도 술 먹고 이혼당하는 아픔을 겪은 만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날 행사장에 참석한 정모(49)씨도 자활의 꿈을 키우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지내왔다는 그는 2008년부터 노숙을 시작했다. 지금은 자활 시설에 입소해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개척해서 일자리를 가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활 시도가 처음부터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자활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힘들었는데. 12개월을 참고 하니 되더라”라며 “처음엔 시간에 맞춰 사는 것도 어려웠지만, 봉사도 하고 일자리도 찾다 보니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영등포구가 주관한 행사엔 서울시립영등포보현의집, 광야홈리스센터, 희망나무, 두레사랑의쉼터, 옹달샘드롭인센터, 햇살보금자리, 서울시립양평쉼터가 참가했다. 시설별로 생활자들이 직접 준비한 장기자랑을 보여줄 때마다 관중석에선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