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하다. 일이 이렇게 끝날 수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검찰이 ‘정윤회 문건’ 파동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지난해 말부터 가시화된 김기춘 비서실장 사퇴설, 뒤이어 불거진 박지만 EG회장 미행설과 청와대 인사들의 줄줄이 사퇴 그리고 세계일보 보도로 촉발된 ‘정윤회 문건’까지, 이 많은 의혹들이 근거없는 ‘찌라시’로부터 시작됐다는 말인가.
국민은 믿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찌감치 이번 사태의 성격을 규정할 때부터 검찰 수사는 이미 한계가 분명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면 순진한 생각이었을까. 결국 박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이른바 ‘십상시’의 국정농단은 시중의 ‘풍문’에 불과했다는 것이 검찰의 결론인 듯하다. 게다가 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이 더 크게 부각되면서 최모 경위는 억울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벌어졌다. 최 경위와 함께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한모 경위는 청와대 회유설이나 JTBC와의 인터뷰 여부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행보다. 결국 박 대통령이 강조했던 ‘국기문란’ 사건인 문건 유출은 박관천 경정과 숨진 최 경위가 모두 뒤집어쓰는 형국이다. 특히 성품이 강직하다고 알려진 박관천 경정은 문건작성과 문건유출 모두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과연 이게 진실의 전부란 말인가.
검찰의 의중대로 수사가 끝나면 청와대는 무죄가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피해자라고 주장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지만 회장은 ‘아니면 말고’ 하며 끝날 수도 있다. 반면에 청와대 3인방은 벼랑 끝으로 갔다가 다시 살아온 기분일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정윤회씨는 약간의 상처는 났을지라도 전체적인 판세에서는 완승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모든 의혹을 벗는 계기가 됐을 뿐더러 그의 존재감을 재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내심 웃으며 훌훌 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국민은 뭔가. ‘찌라시 문건’ 하나로 고민하고 때로는 괴로워하며 청와대와 나라를 걱정했단 말인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뜻의 이장폐천(以掌蔽天)이란 단어가 요즘처럼 자주 떠오른 경우도 없었다. 검찰이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이 없었다고 발표한다고 해서 비선실세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검찰이 문건유출의 내막을 밝혔다고 해서 그대로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는 이번 사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누군가 그 손바닥을 치워버릴 경우 훤한 하늘,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문건이 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 때가 다음 총선이 될지, 아니면 대선이 될지 모르겠다. 검찰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전히 ‘이장폐천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청와대가 오늘따라 더 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