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국대학교 전경.
총장후보 3명 중 2명 사퇴
영담스님, 외압의혹 지적
“총무원이 학교경영 개입”

“문제없다 빨리 선출해야”
단독후보 총장선출에 부담
비난여론에 ‘신중론’ 대두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총장선거를 두고 종단개입 논란을 빚은 동국대학교 차기총장 선출이 결국 보류됐다. 동국대 이사들이 5시간 가까운 격론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제18대 총장선임안을 이월시켰다. 이사들은 논의 과정에서 분을 참지 못하고 고성과 삿대질까지 하는 등 회의 내내 자신들의 주장만 되풀이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동국대 이사회(이사장 정련스님)는 지난 16일 오전 동국대 로터스홀에서 열린 제287차 이사회에서 총장선임안을 놓고 5시간 가까이 설전을 벌였으나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안건을 이월했다.

후보들이 잇따라 사퇴하며 빚어진 조계종단 외압 논란과 총장 선출의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날 이사회는 본회의 전부터 냉랭했다. 총장 선출 거부를 주장한 학부 총학생회 준비위원회,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준비위원회 등이 ‘종단 외압 규탄’ 피켓을 들고 이사회장 밖에서 시위를 벌였다. 또 일부 동문들은 이연택 이사의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쳐 어수선했다.

이사회는 오전 회의에서 ‘제18대 총장 선출의 건’ 상정 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렸다. ‘상정을 보류해야 한다’는 측과 ‘신임총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이사들 간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고, 오후 회의에서도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폐회됐다.

◆외압의혹 지적… 안건채택 두고 찬반

영담스님은 절차상 문제를 들어 “외압 의혹이 불거진 총장 선출의 건은 보류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조계종 현 집행부의 외압은 이사회의 선출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3명의 총장후보자 가운데 2명이 사퇴했음을 지적했다.

영담스님은 “종단 지도부 5원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스님총장을 얘기했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외압에 해당한다. 그 얘기를 듣고 누가 사퇴하지 않을 수 있겠냐”며 종단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11일 김희옥 총장은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 동국대 이사 일면스님 등과 오찬회동을 가졌다. 오찬 후 김 총장은 종단 내 의견을 수렴해 사퇴한다는 뜻을 밝혀 외압 논란이 불거졌다.

이어 스님은 “2명의 후보자가 사퇴한 지금의 상황은 총장후보추천위가 3~5인을 추천하는 복수추천의 의미가 사라졌다. 이사회의 선택권이 없어진 것”이라며 “이 상태로 총장을 선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총무원이 무리하게 학교경영에까지 개입해 원칙을 무너뜨렸으며 이사회 권한마저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성타스님과 일면, 명신, 호성, 삼보스님은 후보자들의 자진사퇴를 절차상 문제로 볼 수 없다며 안건을 상정해 촉구했다.

성타스님은 “이미 총추위를 통해 3명의 후보가 추천됐다. 이사회를 앞두고 후보들이 자발적으로 사퇴한 만큼 신임 총장 선출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안건 상정을 주장했다. 성타스님은 “총장 선출을 늦추면 혼란만 야기된다. 유언비어가 난무할 것”이라며 “절차상 문제가 없는데 뒤로 미룰 것이 아니라 빨리 선출하자”고 밝혔다.

◆강행시 동국대 위상 추락 “신중히 하자”

수세에 몰린 영담스님이 반론을 제기했으나, 다수의 의견에 밀렸다. 그러나 최대식 감사가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최대식 감사는 “시간을 쪼개가며 열심히 봉사해 왔다. 오늘의 이사회 모습을 보니 참담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한명의 후보로 총장을 선출한다면 적지 않은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에 의해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며 “지금 단독후보(보광스님)로 총장을 선임한다면 이사회의 치욕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신중하게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최 감사는 “이 상태로 총장 선출을 강행하면 동국대의 위상과 평판은 추락하고 말 것”이라면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한걸음 물러서서 동국대 발전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연택 이사도 “사립학교법의 근본정신은 자주성과 공공성이다. 총장후보 2명의 사퇴로 사실상 안건이 상정되면 보광스님의 선출 여부의 가부를 묻는 것”이라며 “교과부가 이를 문제 삼아 승인을 거부하면 신임총장에 대한 결례다. 또한 동국대의 명예도 추락된다. 교과부에 관련 내용을 질의해 문제가 없다면 다음에 진행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고 신중히 판단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이사장 정련스님은 안건 상정을 요구하는 다수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교육부 질의 후 안건을 다시 다루겠다”고 이사회 폐회를 선언 후 서둘러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총무부장 정만스님 사퇴

한편 조계종 총무부장 정만스님이 17일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고 사표를 제출했다. 정만스님은 총무부장뿐 아니라 동국대 감사, 10·27법난피해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고 있었다. 스님은 사퇴 이유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도 동국대 총장 선출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을 내비쳤다.

불교계 언론에 따르면 정만스님은 “동국대 총장 문제는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일찍 협의됐으면 돌파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며 “자승스님도 충분히 고민 하셨겠지만 부담을 안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상황으로는 김희옥 총장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도, 다시 총장으로 모셔 올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보광스님도 가벼운 마음으로 총장직을 수행하시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스님은 “미래의 희망인 학생들이 기성세대의 주관적 판단으로 어려움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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