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1960년대에는 마산의 오동동, 동성동 골목을 통칭 오동동이라 불렀으며 마산어항(魚港)의 중심지는 선창이었다. 이곳은 ‘오동동타령’의 가사에 나오듯 멋쟁이 기생들의 장구 소리가 들리고 한량들의 기생놀음으로 밤을 지새는 요정과 술집들이 많았던 곳이다. 돈 많은 한량이 요릿집에서 요리를 즐기며 기생놀음을 할 때 선창의 초가 선술집에서는 장어국을 안주로 무학산 기슭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로 빚은 소주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곤 했다고 한다.

아귀어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마산의 향토언론인인 고(故) 김형윤 선생이 쓴 ‘마산야화(馬山野話)’에 등장한다. 김형윤 선생이 1970년 10월부터 마산시사를 편찬하면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고, 이 책에 아구라는 음식이 3~4년 전만 해도 바다에 버리던 아구가 술안주나 밥반찬으로 등장했다고 하니 대략 잡아 1966~1967년으로 생각되나 박영자 할머니 등 아구어 요리를 하는 분들의 구전에 의하면 1964년이라고 한다.

이때 요정골목 한 구텅이에 위치한 초가로 된 간판도 없는 선술집(현 마산시 동성동 186번지 한국장 앞, 현재 집이 헐린 상태로 있음) 주인 혹부리 할매(턱밑에 큰 혹이 나 있어 붙여진 별칭)가 장어국을 끓여 팔았는데, 1964년 어느 추운 겨울날 어부들이 마산 어시장에서 못생기고 재수 없게 생긴 아귀어를 들고 와 “할무이! 이 괴기로 안주 하나 해 주소!”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혹부리 할머니는 “참 밸일도 많다! 이 코 질질 흘리는 못생긴 괴기를 오데 쓸라꼬 재수 없게 스리. 일 없소!”하면서 작은 봉창문 밖으로 이 아귀어를 내동댕이쳤다. 그러던 어느 봄날 혹부리 할머니가 시장에 갔다 오던 중 처마 밑에 웬 마른 명태 같기도 하고 마른 가오리 같은 어포(魚脯)가 있어 주워 보니 그게 바로 자신이 버린 아귀어인지라 이것을 갖다 무와 된장을 넣고 자작자작하게 아귀찜을 만들어 선술집을 찾는 어부들의 술안주로 내놓으니 그 맛이 각별했다. 이후 마산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1964년경 속칭 오동동 골목이라 불리던 마산시 동성동 51번지에서 역시 장어국을 팔던 박영자 할머니가 운영하던 진짜초가집원조아구찜집(마산시 오동동 152-41)과 그 옆 골목의 구강할매집(마산시 오동동 185)이 마른아귀어에 콩나물, 미나리, 미더덕을 넣고 찜을 하는 ‘마산아구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만 해도 마산에는 각 가정의 옥상에 아구덕장을 무색케 할 정도로 집집이 아귀를 말렸으며 아귀덕장이 여러 군데 있었으나, 지금은 마산교도소 뒤편의 한 군데에서 12월 한 달 동안만 아귀어 덕장을 운영한다. 여기에 마산을 비롯한 경상도에서 ‘물꽁’으로 알려졌던 아귀어가 아구어로 불리게 된 사연도 재미가 있다.

전남 신안에서 마산으로 시집을 온 마산 ‘진짜원조초가아구찜집’의 박영자 할머니이며, 이 할머니는 마산의 아귀어찜을 자기의 고향말로 아구찜이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마산아구찜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지금은 혹부리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오동동, 동성동 골목에는 아구찜집 약 10개 업소가 성업 중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마산아구찜을 전국에 알린 집은 오동동아구할매집(마산시 동성동 48-2) 김삼연 사장이다. 김 사장은 1981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국풍81’에 마산아구찜을 가지고 나가 당시 각종 언론 매체에 마산아구찜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이 행사는 신군부에 의해 열린 관제행사였으므로 국내 모든 언론이 행사가 끝나는 날까지 보도를 한 덕에 전국의 향토 별미들이 많이 발굴 소개됐다.

우리나라의 아귀어찜은 4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는데, 마른 아귀어를 주재료로 하는 마산아구찜, 생아구를 주재료로 하는 부산아구찜, 생아구에 전분 대신 찹쌀을 넣는 동래찹쌀아구찜(동래원조 아구찜,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 1동), 아귀와 함께 해물을 넣는 인천의 ‘물텀벙이’가 있다. 예전부터 인천항 부근에서는 아귀어를 물텀벙이로 불러왔다. 어부들이 그물에 걸린 아귀어를 물에 다시 던질 때 나는 소리가 ‘텀벙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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