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체성 확실히 하기 위한 것, 속임수 아냐”

[천지일보=김민아 기자] 여성성을 지향하는 20대 남자가 입대를 피하려고 성호르몬 등을 투약한 경우 죄가 되지 않는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모(22)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김씨는 중학생 때 자신이 여성스럽고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교 시설 성적 소수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면서 동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대학생이 된 김씨는 입대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성전환 수술을 하면 면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자신의 외모가 그다지 예쁘지 않고 부모님께 죄를 짓는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

아들의 상황을 알지 못한 어머니는 대신 지원입대를 신청하는 등 억지로 군대에 입대하도록 부추겼다. 김씨는 신체검사에서 3급 현역 판정을 받고 2011년 102보충대에 입영했다. 그러나 막상 보충대에 들어가자 다른 동료들과 함께 씻는 것조차 무서울 정도로 적응이 어렵게 됐다. 김씨는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밝히고 이틀 만에 귀가 조치를 받았다.

이후 김씨는 도저히 군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 자신의 몸을 여성화하기로 결심했다. 트랜스젠더로 인정받기 위한 목적이었다. 김씨는 병원에서 ‘성 주체성 장애’ 진단을 받고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김씨는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아 가슴이 커지는 등 여성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재검 시에는 여장을 하고 나갔다.

검찰은 트랜스젠더인 것처럼 위장해 병역 의무를 면제받으려 한 혐의로 김씨를 재판에 넘겼다. 병역 의무를 기피하려고 신체를 손상하거나 속임수를 쓰면 안 된다는 취지의 병역법 86조를 위반했다고 봤다.

1심과 2심은 이 같은 김씨의 행동이 군대를 면제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판단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입대 전부터 구체적·현실적으로 성전환 여부를 고민한 점 등 김씨는 적어도 정신과적으로 ‘성 주체성 장애’를 가진 게 확실하다”며 “군대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호르몬 주사를 맞게 된 하나의 계기였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실히 하기 위해 여성화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3심의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기록에 비춰보면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칙에 위반되거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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