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이명박 정부가 지난 해 출범했을 때 필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새 정부가 과연 한반도 대운하사업을 원안대로 추진할 것인지였고, 또 하나는 참여정부가 기공식까지 해놓은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를 역시 당초 원안대로 건설할 것인지였다. 이 같은 관심은 호기심 차원의 관심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의구심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최근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 불행하게도 필자의 불안한 예감이 적중해가는 듯하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당시 이명박 후보의 공약사업이었던 한반도 대운하사업과 노무현 참여정부가 전력투구해 시동을 걸었던 세종시 건설사업을 잘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우선 두 사업 모두 당초 원안에서 변질돼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런데 형식이 변질됐다는 점에선 유사하지만 내용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타난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한반도 대운하사업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너무도 거세지자 지난 5월 29일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임기 내에는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대운하 사업을 백지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안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대운하사업은 이후 4대강 살리기 사업이란 위장간판을 내건 사업으로 다시 등장했다. 정부가 10일 일제히 착공한 4대강 사업은 사실상 대운하사업과 대동소이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세종시 건설사업은 원안대로 추진돼가는 듯하다 정운찬 총리가 취임하면서 역시 변질될 가능성이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세종시 건설사업은 원안대로 추진되는 모양새지만 내용은 사실상 백지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이처럼 두 사업은, 내용은 정반대로 추진돼가고 있지만 본질은 한가지다. 정부가 국민을 우습게 알고 편법을 총동원해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운하사업은 4대강 사업으로 가장해 추진하고 있고, 세종시 사업 역시 기업도시 등의 편법을 동원해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세종시 사업의 경우는 지난 정부가 첫 삽을 떴던 사업이긴 하지만 국회에서 여야 간에 합의했던 국책사업이어서 만약 사업자체가 무력화한다면 그 후유증은 매우 심각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국책사업이 곡절을 겪는 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곤두박질 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현재 연기군청 마당에서는 연기군수를 비롯한 연기군민 일부가 천막을 쳐놓고 ‘세종시 원안 추진’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다. 이 농성장에는 ‘모든 계획 차질 없이 진행되길 바랍니다. 2007년 9월 12일 이명박’이라는 대통령의 친필 옆에 다음과 같은 논어의 한 구절이 걸려있다. 논어의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구절이다.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자공이 정치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가 말하기를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를 충분케 하며, 백성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자공이 묻기를 부득이하여 버린다면 셋 중에 먼저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군사를 버려야 한다. 자공이 다시 묻기를 부득이하여 버린다면 둘 중에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식량을 버려야 한다. 예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었지만, 백성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다.)

 

民無信不立(민무신불립), 백성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이 정부가 다시 새겨보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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