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태주(1945~  ) 

방구석에 세워 놓은
장롱짝같이 우뚝한
있을 땐 모르다가도
사라지면 문득 그리워지는

때로는 무덤으로 찾아가
무릎 꿇고 물으면
마음속 들리지 않는 말로
대답해 주는 음성

아버지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시평]
아버지가 계실 때는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아무러한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이 우리들이다. 마치 매일 이불을 꺼냈다가는 다시 넣고, 넣었다가는 다시 꺼내는, 방 한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우뚝 서 있는 장롱짝 마냥. 아버지는 그런 분이시다.

그러나 방구석에서 그 우뚝 서 있던 장롱이 사라졌다고 하면, 아니 이불은 어디에다 넣는고? 매일 덮고 자는 이불은 어디에서 꺼낼꼬? 비로소 그 장롱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듯이, 우리를 덮어주고 또 쟁여주는 아버지, 아버지 떠나신 뒤 뒤늦게 우리는 깨닫는다. 아버지의 우뚝함을.

아버지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안 계시는 듯, 계시는 분. 그러나 가장 어렵고 힘이 들 때 가장 가까이 계신 분. 그래서 마음 속 들리지 않는 말씀으로 대답해 주시는 분.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바로 그런 분이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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