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교묘한 속임수 잡아내기 역부족, 비디오 판독도 고려해야

전 세계가 티에리 앙리의 ‘핸드볼 사건’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일은 분명히 앙리의 ‘속임수’이며 프랑스는 ‘더러운’ 팀이며 아일랜드는 억울한 피해자라는 것이 목소리의 주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할 부분은 옛날 판정제도를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는 축구계의 보수적인 정책이다. 야구와 농구, 배구, 테니스까지 문명 과학의 발달로 TV 화면 리플레이를 통해 판정을 내리는 일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축구는 옛날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TV가 없던 옛날에는 경기장에 가지 않고서는 경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심판이 모든 권한을 가지는 것이 당연했다. 심판이 바로 경기를 주관하고 모든 판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종의 ‘신(神)’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TV가 생기며 경기장에 있는 관중뿐만 아니라 안방에서도 경기를 지켜볼 수 있게 됐고 녹화기술 등으로 리플레이까지 가능해지면서 느린 화면으로 어떤 파울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야구와 농구, 배구, 테니스 등은 TV 리플레이 화면을 통한 비디오 판독 제도를 도입했다.

야구의 경우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서는 여전히 주심의 권한이지만 홈런이냐, 파울이냐의 여부를 감독의 항의가 있을 경우 비디오 판독으로 판정한다. 또 농구와 배구도 일부 판정에 대해 비디오 판독을 도입했고 테니스는 ‘호크 아이’라는 기술로 선을 벗어났느냐 아니냐를 판정한다.

그러나 축구만큼은 요지부동이다. 축구는 리플레이를 통한 비디오 판정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행여나 리플레이를 통해 오심이 보일까 경기장에서의 리플레이 상영도 염격하게 금지한다.

하지만 이는 ‘눈가리고 아웅’이다. 경기장에 있는 몇 만의 눈을 속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 수십만에서 수천만, 수억까지 달하는 시청자들의 눈은 절대로 속일 수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TV를 통한 리플레이도 금지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면 이마저도 못하게 하겠지만 막대한 중계권료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결국 여기에서 경기장 안팎에서 괴리가 생기고 모순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IFA는 판정에 과학의 힘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꺼리고 있다. 한때는 ‘스마트 볼’을 시험하며 골라인 판정에 대해 과학의 힘을 빌리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흐지부지됐다. 이 때문에 유럽축구연맹(UEFA)은 유로파리그에서 골라인 근처에 2명의 심판을 더 두는 6심 제도를 도입했고 K리그 챔피언십에서도 이를 운영하기로 했지만 이것으로는 역부족이다.

앙리의 사례에서도 봤듯이 선수들의 영악한 눈속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니, 눈속임 행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교묘해지고 있다.

무려 23년 전인 지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는 명백히 손으로 공을 쳐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라는 말장난으로 자신의 잘못을 회피했다. 앙리도 “핸드볼은 맞지만 판정은 주심이 하는 것”이라며 발뺌했다. 여기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많은 선수들은 페널티지역 ‘다이빙’으로 페널티킥을 얻어내려고까지 한다. 심판이 이를 잡아내 경고를 주긴 하지만 100% 잡아내는 것은 무리다.

앙리 사건을 계기로 FIFA도 이제는 더이상 19세기식 판정제도를 고집해선 안 된다. 이제는 비디오 판독도 고려해야만 한다. FIFA가 그동안 “비디오 판독은 경기의 흐름을 끊는다”고 계속 반대의 입장을 취하지만 현장의 지도자들은 “경기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만큼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도 비디오 판독을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론 순간순간마다 선수들이 항의를 한다고 해서 비디오 판독을 요구한다면 축구 경기는 한없이 늘어질 것이다. 하지만 테니스가 ‘챌린지’라는 제도를 도입해 호크 아이 시스템을 통한 비디오 판독 요구에 제한을 두듯이 현장 지도자 의견대로 중요한 순간에만 비디오 판독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결코 ‘앙리의 핸드볼 사건’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FIFA가 이번 일을 계기로 마음을 바꿀 것인지, 아니면 예전 제도를 그대로 고수하며 고집을 피울 것인지는 바로 FIFA의 마음에 달렸다. 하지만 현장과 팬들의 목소리를 계속 외면한다면 축구라는 종목이 지금처럼 영원히 사랑을 받지는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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