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시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 전시실 내부 ⓒ천지일보(뉴스천지)
상업 중심지·경제 활성화 등 비옥한 터
각종 예술 문화·신 숭배 의식에 열정적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로마 고대 도시 폼페이는 ‘키비타’라고 불리는 용암 대지 위에 들어섰다. 면적은 66만㎡에 달했으며, 도시를 둘러싼 성벽은 약 3200m에 이른다. 모두 여덟 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여덟 번째 문은 이미 오래 전에 폐쇄됐고, 열두 개의 사각 탑이 성벽을 보강했다. 

바다와 가까운 언덕에 자리한 상업도시였던 폼페이는 사르누스 강이 흐르는 비옥한 농지와도 인접해 있었다. 강과 바다와 가까운 지리적 여건은 내륙 도시와의 교역에 유리했다.

하지만 도시 경제의 주요 기반은 비옥한 토양을 토대로 한 농업이었다. 베수비우스 기슭은 포도밭으로 덮여 있었고, 사르누스 강 인근 평원에서도 포도와 채소가 재배됐다. 또한 인근에 염전이 있어서 소금을 생산했다. 양모와 섬유, 각종 도기와 함께 로마 요리에서 사용하는 생선 양념인 가룸도 제작됐다.

약 3200m 길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는 100여 개의 집단 주택으로 이뤄져 있었다. 동·서와 남·북을 잇는 주요 도로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폼페이는 기원후 79년 화산 폭발로 매몰됐으나 각종 신전과 주거지, 공공건물과 상업 및 농업 부지 등이 남아 있어 이 도시가 수행했던 여러 기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폼페이의 중심지였던 광장은 주피터 신전과 아폴로 신전, 공회당, 시장, 에우마키아의 건물 등 주요 성소와 공공건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즐비하게 늘어선 건물 기단 위에는 역사적 인물, 신화 속 영웅, 황제, 위인들의 조각상이 있었다.

폼페이 시민들의 눈에 비친 광장에서의 일상들을 묘사하고 있는, 율리아 펠릭스의 농장에서 출토된 ‘광장에서의 일상’이라는 유명한 그림을 통해 폼페이 광장의 외관을 파악해 볼 수 있으며, 성소와 공공건물을 묘사한 19세기의 수많은 삽화도 폼페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폼페이의 경제 활동은 와인, 양모 도매, 식품 등의 사업을 했다. 특히 시장은 주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한편 소비재의 가격과 품질을 관리하는 기능도 수행했다. 시장과 곡물저장고 광장에서 폼페이의 식료품을 주로 공급했으나,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도시 곳곳에서는 신선한 빵이나 패스트리, 채소와 과일을 판매했다.

폼페이 인구가 약 1만명, 주택이 약 800채였던 것에 비해 상점이 600여 곳이나 됐다는 것을 흥미로운 사실이다.

포피두스 프리스쿠스라는 사람의 소유였던 제과점이 30곳 이상 발견됐는데, 밀 제분부터 빵이나 케이크 제조까지 공정별로 일련의 작업이 이뤄졌다. 또 가게와 선술집, 여관, 공방은 폼페이의 경제 및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도시에는 아폴로에게 봉헌된 신전도 있었다. 아폴로는 그리스인이 로마에 처음으로 소개한 신이었다. 그의 신전은 광장 한편에 있었으며, 아폴로 숭배 의식은 폼페이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기록됐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이 9일부터 2015년 4월 5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기획특별전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를 열고, 고대 로마제국의 화려한 도시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폼페이 유적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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