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페셜] 풍요로웠던 로마 고대도시 폼페이, 자연 재앙으로 역사에 묻히다①
[문화스페셜] 풍요로웠던 로마 고대도시 폼페이, 자연 재앙으로 역사에 묻히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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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으로 피신한 상태에서 죽은 사람들의 캐스트가 발굴 현장에 그대로 있다. 당시 참혹했던 순간을 상상하게 한다(위). (왼쪽부터) (1)이 남자는 유독가스와 화산재가 덮치자 웅크린 채 망토의 모서리로 입을 가렸다. (2)개는 사슬을 끊지 못해 질식하고 말았다. 죽는 순간 뒤틀린 자세는 캐스트 복원하기가 어려웠다. (3)똬리를 틀고 있는 뱀 모양의 팔찌(위)와 금팔찌(아래)는 팔 위쪽에 착용했던 것이다. (4)품페이에서는 13개의 금화가 발견됐다. 이는 당시 군사 100명을 거느리던 장군의 몇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5)유리 유골항아리 안에는 뼈와 함께 저승에서 뱃삯으로 낼 동전이 들어 있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화산재로 덮여 부패하며 생긴
빈 공간에 석고·물 배합해 복원

한-이 수교 130주년 기념展서
폼페이 출토 유물 300여건 공개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기원후 79년 8월 24일 풍요롭고 호화로웠던 로마 고대도시 폼페이가 화산재에 묻혀 사라졌다. 베수비우스 화산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막대한 양의 화산자갈과 용암, 유독가스를 배출해 주변 도시였던 헤르쿨라네움, 스타비아에, 오플론티스와 함께 폼페이를 삼켜버린 것이다.

 
폼페이 최후의 날… 재앙 앞에 속수무책

폼페이 유적은 ‘화산 폭발로 순식간에 도시 전체가 없어질 수 있을까’ ‘폼페이 주민들은 주변에 화산이 있음을 알면서도 왜 대재앙을 대처하지 못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던진다.

하지만 폼페이 재앙은 의심할 여지없이 화산 폭발로 인한 최후의 순간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250년간 연구가 지속됐으며, 지금까지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또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폼페이는 찬란하고 풍요로웠던 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폼페이 사람들은 지진 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화산 폭발이 있기 17년 전인 기원후 62년에 지진이 일어나 건물이 파괴되고 손상되는 등의 피해가 컸으며, 여전히 복구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지진은 언제나 예측이 가능한 재난이었다. 그러나 베수비우스가 폭발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화산의 마지막 폭발은 기원전 7세기에 있었으며, 당시 폼페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폼페이의 재앙은 당시 사람이었던 소 플리니우스가 남긴 두 통의 편지에 긴박한 순간이 잘 묘사돼 있다. 소 플리니우스는 베수비우스의 화산 폭발이 시작됐을 때 미세눔 지역 주둔 함대의 지휘관이었던 삼촌 대 플리니우스와 함께 캄파니아에 있었다. 화산이 폭발하던 순간 폼페이를 본 목격자였다.

그의 편지에는 “며칠 동안 땅이 계속해서 흔들렸지만, 캄파니아에서 지진은 흔한 현상이었기에 누구도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밤에 지진은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상상 이상으로 격렬해졌다(중략)…”며 “여인들의 비명 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 남자들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각자의 부모, 아이, 배우자를 애타게 찾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고, 서로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죽기를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이 하늘을 향해 손을 모아 기도했지만… (중략) 모든 것이 달라진 것처럼 보였고, 모든 것이 두꺼운 화산재로 덮여 있었다”고 기록됐다.

화산 폭발이 잦아드는 것처럼 보이자 귀중품을 챙기러 집으로 되돌아온 사람들, 부유한 집에 도둑질하러 온 사람들은 끓는 것처럼 뜨겁고 화산재로 가득 찬 증기 기류로 인해 순식간에 질식사했다. 또 더러는 화산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지붕이 붕괴되면서 건물의 잔해에 깔려 사망한 사람들도 있었다.

석고 캐스트로 참혹한 순간 그대로 복원

폼페이 희생자들의 석고 캐스트(cast)는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보여주는 매우 특별한 기법의 결과물이다. 캐스트 복원은 1847년부터 폼페이 발굴 현장을 감독하고 1860~1875년까지 발굴 책임자를 역임한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가 처음 고안했다.

캐스트 기법은 아주 간단하다. 베수비우스 지역에는 화산 폭발로 인해 생성된 독특한 지층이 남아있다. 화산 폭발 1단계의 특징은 화산 자갈이 빗발치듯 쏟아졌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2단계에서는 화산재가 낙하해 대지 위를 뒤덮는데, 이 단계에서는 일명 ‘불타는 구름’이라 불리는 고온의 화산재가 빠른 속도로 지역 전체에 밀려들어 파괴와 죽음을 초래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2단계에서 분출된 화산재는 이후 단단히 굳어서 좀처럼 변하지 않는 지층이 된다. 이 단단한 지층에서는 유기물, 즉 가구나 세간 같은 목제품이나 시체 등이 부패해 생긴 빈 공간이 자주 발견된다. 이 빈 공간에 석고와 물을 배합해 가득 찰 때까지 주입하고, 석고가 굳을 때까지 기다린 후 발굴을 진행하면 원래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던 물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단단한 재가 거푸집처럼 그 안에 묻힌 물건이나 시체의 형태, 자세를 보존하는 것이다.

이렇게 응고된 석고를 캐스트라고 한다. 캐스트는 다른 고고학 현장과 달리 희생자의 유골뿐만 아니라 이들의 실제 형태와 외관, 의복, 표정, 몸짓, 더 나아가서는 비극의 고통까지도 보존할 수 있다.

발굴 보고서에 기록에 따르면 도시 안에서 발굴된 희생자는 총 1047명이다. 이 중 캐스트로 복원, 제작된 것은 단 103건에 불과하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서 캐스트 공개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이 9일부터 2015년 4월 5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기획특별전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를 열고, 고대 로마제국의 화려한 도시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폼페이 유적을 조명한다.

8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김영나 관장은 “폼페이 유적은 죽은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담고 있어 사라졌던 역사의 한 장면이 발굴을 통해 새롭게 부활한 역사적인 현장”이라며 “폼페이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와 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맞아 이번 전시를 계시로 더욱 돈독한 우호 관계를 이어가고 이탈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마시모 오산나 폼페이·헤르쿨라네움 및 스타비아에 고고문화유산 관리국장은 “화산자갈 아래에 놀랄 만큼 잘 보존된 폼페이 유적은 집이나 공공장소에서의 일상을 정확히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유독가스와 화산재가 덮치자 쭈그린 채 망토로 입과 코를 막고 있는 남자, 옷으로 얼굴을 감싼 채 엎드려 죽은 여인, 집 안에 묶여 있다가 목줄을 끊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개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캐스트(cast)를 직접 볼 수 있다.

이외에도 고대 로마시대 조각품, 장신구, 벽화, 수술도구, 장례용품 등 폼페이와 주변 지역 출토 문화재 300여 건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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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2014-12-10 10:34:40
참혹하다는 말이 맞네요 사람의 형상 그대로 저렇게 죽어갔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웟을까요

조명수 2014-12-09 23:24:43
끔찍하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자연앞에선 아무 힘도 쓸 수 없다는 거. 파리목숨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