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종묘를 동양의 파르테논신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수식 없이 종묘(宗廟)라고 해야 옳다. 종묘가 가진 역사성과 종묘만이 가진 현재성에 묵중한 중량감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 가진 의미도 크지만 종묘는 종묘만이 가진 특별함이 있다. 어느 나라에서도 가지고 있지 않은 종묘만의 특별함이다. 종묘는 세계에서 유일한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가진 직선성은 두렵고 신비하다. 시간 앞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없다. 시간에 얽매여있다. 일직선인 시간이 종묘에 오면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한 곳에 그대로 쌓이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인간이 인간으로 이어지고, 인간이 인간에 의해 다시 태어나 연속성을 가지게 되는 것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이야기한대로 종묘는 첫째, 시간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둘째, 현재에도 제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현장이다. 셋째, 한국인의 기질과 정서가 녹아있는 공간이다. 넷째, 세계에서 유일한 종묘 양식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나서 제일 먼저 지은 건축물 중 하나가 종묘다. 그만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건축물이다. 태조 이성계는 재위 3년, 1394년 8월에 한양을 새 도읍지로 최종 결정하고 그해 10월 천도를 단행했다. 태조는 가장 먼저 종묘와 사직을 건설했다. 유교 이념에 따라 궁궐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을 세웠다. 1395년 9월에 완공돼 계속 증축됐다. 헌종 2년, 1836년에 4칸을 증축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무엇이 시간의 건축물이라 명명하게 했을까. 종묘는 1394년 공사를 시작해서 1836년 정전 4실을 증축하기까지 무려 442년 동안 지어진 건축물이다. 첫 공사 완공은 1395년 9월 29일이었다. 조선이 개국을 하면서 가장 먼저 지은 건축물이고, 중요하게 여긴 건축물이다. 그만큼 조상에 대한 각별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종묘를 지을 당시에는 당장 필요한 건축물을 지었다. 조선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필요한 공간이 늘어났다. 증축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지어진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그 기간이 442년이다. 시간의 건축물이란 말이 자연스럽다.

종묘는 창건 당시 대실이 7칸이었고, 대실 안에는 석실 5칸을 만들었으며, 대실 좌우에는 익랑을 각각 2칸씩 이어 지었다. 그 밖에 따로 공신당 5칸, 신문(神門) 3칸, 동문 3칸, 서문 1칸 규모의 건물을 지었다. 종묘가 완성되자 태조는 날을 받아 1395년 10월, 4대조의 신주를 개성에서 옮겨와 봉안했다. 한국인의 조상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큰가를 엿볼 수 있는 일이다.

조선시대에 종묘 정전은 태종, 세종대에 이르러 건축 형식이 정착된다. 태종은 종묘 앞에 가산假山을 조성했다. 종묘가 주변의 완만한 구릉에 의하여 아늑한 기운이 들도록 했다.

종묘를 구성하고 있는 중심 건물은 종묘 정전과 영녕전인데 처음에는 정전만 있었고, 영녕전은 세종 때 건립헸다.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증축된 건축물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종묘에서 지내던 제례가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600여 년 동안 제례를 지내고 있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태조 이래 지금까지 전통행사 그대로 재현되며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조선이란 나라가 있을 때는 당연한 일이지만 조선의 역사가 이미 과거가 된 지금에도 같은 방식, 같은 예도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조선이 망한 지 다시 1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이 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또한 조선 왕조 27대 왕과 왕비의 능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왕릉 42기 중 북한에 있는 2기를 빼고 40기가 남한에 있는데 모두 제례를 지내고 있고 한 기도 빠짐없이 그대로 보존되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한 집안 문중마다 시제가 이어지고 있고, 관리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놀랍다. 족보가 아직도 살아남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근거 있는 뿌리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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