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서울역 앞에 있는 흡연실 앞에서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담배 피울 장소 없어 길거리로… 비흡연자도 곤혹
“대책 없는 금연정책에 불만… 흡연구역 설치해야”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1, 4호선 지하철 서울역에서 회사까지 거리는 약 700m로 160㎝ 여자의 발걸음으로 15분 정도 된다. 5일 오전 8시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나와 서울역 서부역 쪽으로 가는 길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 2명이 담배를 태우며 길을 걸었다. “콜록. 콜록.” 공복에 니코틴을 마시자 골치가 아파졌다. 남성 2명을 제치고 역사를 지나 서부역 앞 신호등에서 대기했다. 그때 다섯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20대 남성이 담배를 태우자 뒤에 있던 여성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코와 입을 막으며 주위에서 한 발짝씩 떨어졌다. 도저히 안 되겠는 지 한 여성은 흡연자를 한껏 째려보더니 자리를 옮겼다. 이날 출근길에만 총 9명의 흡연자를 봤다.

“담배 연기 너무 싫어서 도망치고 싶어요.” (장민혁 군, 6세)

정부의 금연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비흡연자들은 여전히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길거리에서 불특정다수의 흡연자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로 인한 간접흡연이 비흡연자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필 장소가 없다”고 한탄했다.

지난달 11월 네이트가 6923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길거리 흡연 금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찬성(간접흡연 피해 심각)’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76%(5228명)이었다. ‘반대(지나친 흡연자 권리 침해)’는 24%(1653명), 기타는 1%(42명) 등으로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시민이 가장 문제 삼는 것은 ‘거리 흡연’이다. 회사원 전영진(30, 여) 씨는 “나는 흡연을 하지 않음에도 출근길에 집에서 나오자마자 흡연자를 만나면 짜증이 ‘확’ 난다”며 “기관지가 약해서 담배 연기를 마시게 되면 숨이 막혀 괴롭다. 길거리 흡연을 전면 금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담배를 끊은 지 5년 됐다는 전인호(50, 남,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씨는 “몸에서 일명 ‘담배 쩐내’가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금연하게 됐다”며 “본인은 몰라도 타인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길거리 흡연은 키 작은 유아·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에는 남성 두 명이 피우던 담뱃재가 유모차에 타고 있던 두 살배기 아기의 눈에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담뱃불이었다면 실명 위기까지 올 수 있던 상황이었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아이 둘을 두고 있는 김서영(33, 여,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씨는 “아이들과 담배 연기로 가득한 버스 정류장이나 신호등 앞에 서 있을 때 제일 괴롭다. 연기를 마시는 아이들도 힘들어 한다”며 “아이들 눈높이가 서있는 성인의 손 높이다 보니 담배를 든 손이 아이의 얼굴을 공격할까 염려된다”고 하소연했다.

흡연자들도 금연정책으로 인해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인 송석은(28,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씨는 “담배를 피울 장소가 거의 없다. 길거리에서 눈치보며 피우거나, 구석에서 핀다. 흡연자를 죄인 취급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책 없는 금연정책도 문제다. 국내 최대 흡연자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 이연익 대표운영자는 “내년 1일을 기점으로 전국 모든 건물 내 흡연이 금지된다. 그러나 흡연자에 대한 대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일정한 지역에 흡연구역과 흡연실을 설치한다면 길거리에서 흡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흡연공간이 부족해서 흡연자들이 길거리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운영자는 “일본에서는 실내 업주가 흡연실을 설치할 경우 정부가 설치비용의 50%를 지원한다”며 “금연사업은 좋다. 그러나 흡연자에 대한 특별한 대책 없이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일 여야가 담뱃값을 예정대로 2000원 인상하는 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담뱃갑 경고그림 게시와 담뱃세의 물가연동제는 추후 논의하기로 함에 따라 ‘반쪽 금연대책’이라는 뭇매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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