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흔히 ‘아구찜’으로 알고 있지만, 아구찜의 표준어는 ‘아귀찜’이다. 이 음식을 만드는 주재료인 생선 이름이 ‘아귀’이므로 아귀찜이 맞는 표현이다.

‘아귀’란 말은 입을 뜻하기도 한다. 아귀는 큰 입을 가진 물고기라는 뜻이 된다. 어느 쪽이 됐든 아귀가 이 물고기의 특성을 잘 나타낸 이름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귀어(餓鬼魚)’의 유래는 불교의 ‘아귀도(餓鬼道)’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말에 음식을 탐하는 사람을 걸신 들렸다 하는데, 이 아귀귀신은 입이 커 음식을 탐하지만 목구멍이 바늘귀처럼 작아 막상 소화기관에 들어가는 양은 적기 때문에 항상 굶주림에 허덕여 몸이 앙상하게 말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귀어는 입이 크고 탐욕스러워 배를 갈라보면 자기 몸보다 큰 상어류나 큰 물고기 등은 물론 음료수캔 같은 것들이 나온다. 차라리 아귀어라는 이름보다는 물고기의 형태나 생태로 봐서 이 물고기 이름은 ‘조사어(釣絲魚)’이고, 속명을 ‘아구어(餓口魚)’라고 한다.

정약전이 1801년(순조 1년)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박해 때 전라도 흑산도에 유배돼 1814년(순조 14년)까지 생활하면서 이 지역의 해상 생물에 대해서 분석해 편찬한 해양 생물학 서적 ‘자산어보(玆山魚譜, 서울 세화고 생물교사인 이태원 교사 등은 이 책을 ‘현산어보’로 읽고 있다)‘에 보면 ’조사어‘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그 속명은 아구어라고 했으니 ‘아구어’라는 말은 흑산도를 비롯한 전라도의 사투리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 기록된 것처럼 ‘조사어’라는 이름이 어울릴 것 같다. 영어에서도 ‘낚시꾼 물고기’라는 뜻을 가진 ‘Angler Fish’라고도 하고, 바위가 많거나 해조류가 무성한 해저에 서식하는데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처럼 흉악한 몰골을 하고 있다고 해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아귀를 악마의 물고기 ‘devil fish’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바다 밑을 유영하면서 입 바로 위쪽에 낚싯대라고 하는 안테나 같은 것이 달려 있는데, 안테나와 같은 곳 끝 부분에 실처럼 붙어있는 흰 피막을 흔들면서 물고기를 유인해 잡아먹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귀어는 아구어 말고도 지방마다 각각 사투리가 다 있었는데, 부산·경남지방에서는 아귀어를 ‘물곰’이라 불렀다.

이 ‘물곰’이라는 이름도 경상도의 센 발음으로 ‘물꽁’이라 했고, 이외에도 물돔, 배기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도 다른데, 아꾸, 망청어, 물꿩, 반성어, 귀임이, 꺽정이,  망챙어 등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사실 ‘아구어’는 경상도 말이 아니라 흑산도를 비롯한 전라도 말이다. 전남 신안에서 마산으로 시집을 온 ‘마산 진짜 원조 초가 아구찜집’의 박영자 할머니로부터 시작됐다.

이 못생기고 먹을 게 없는 아귀어가 그물에 걸리면 재수없다고 바로 바다에 버렸다 해서 인천 지방에서는 ‘물텀벙이’라고 불렀고,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 지방 역시 아귀어가 그물에 걸리면 바다에 도로 버리거나 어시장 한구석에 내동댕이치는 천덕구니였다.

이렇게 천덕구니 취급을 받던 아귀어를 언제부터 먹게 되었을까? 아귀어를 찜으로 만들어 대중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마산의 아구찜이라 할 수 있으나, 아귀어를 먹기 시작한 것은 부산이 먼저다.

1967년경 부산의 음식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해 놓은 박원표의 ‘부산고인록(釜山故人錄)’ 어디에도 아귀어 요리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산에 아귀어 요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은 피란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이로 인해 먹을거리도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게 됐다.

특히 한국전쟁 후 1950년 중반에 아귀어는 ‘물꽁(물곰)찜’이라는 이름으로 부산 서면 미군부대 옆 물탱크 근방에 술도가가 있었는데, 이 술도가 창고에서 할머니 두 분이 생아귀어를 쪄서 양념장에 찍어 술안주로 먹을 수 있도록 조리했고, 충무동 썩은 다리 옆 판잣집에 생아귀로 물꽁찜을 해서 파는 집이 있었다.

이 외에도 물꽁집은 서면일대에 몇 집이 있었으니 비록 음식 이름은 다르다 해도 아귀어찜은 마른 아귀어를 주재료로 사용한 마산보다 부산이 먼저라 할 수가 있다. 이렇듯 부산의 물꽁찜이나 아구찜은 생아귀어를 주재료로 한다. 지금도 부산의 토박이들은 생아귀를 주재료로 해 만든 찜을 ‘물꽁찜’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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