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 이전 전시된 풍납토성 동쪽 성벽, 지난 2011년 동성벽 발굴조사 모습,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 전시된 풍납토성 복원 모형 (사진제공: 문화재청)
5층 아파트 높이… “연인원 138만명 투입”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융합연구 성과
시료 분석해 성벽 축조 연대·특성 등 파악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일제 시기부터 하남 위례성으로 주목받아왔던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백제 토성인 ‘풍납토성’ 건설에 연인원 138만 명 이상이 투입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또 토성은 최대 13m나 되는 아파트 5층 높이 정도의 규모로, 흙을 다져 올린 거대 성벽이었음이 드러났다.

왜적으로부터 마을 보호한 ‘풍납토성’

풍납토성은 평지에 도성을 세우고 성을 보호하기 위해 외곽을 둘러쌓은 토성이다.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을 이루는 토성 내에는 성과 함께 사람들의 거주지가 밀집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 된다. 한강 유역에 있는 백제 유적 가운데 최대 규모의 토성 유적으로, 보호구역은 413필지 25만 4301㎡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호로 지정됐다.

1964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에서 시굴 조사를 한 후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이에 방치돼 오다가 1970년대에는 서울시 도시개발로 주택지가 들어서 토성의 흔적이 점차 사라 졌다.

이후 1997년 지금의 송파구 토성동 현대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쏟아져 나온 다량의 백제 토기와 주거지터와 유구 등이 풍납토성 발굴 당위성을 제시하며 2004년부터 시작된 발굴 조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최대 13.3m 높이 토성… 두 차례 증축 확인

풍납토성의 축조 연대와 성격 등은 한국 고고학과 고대사 연구의 중요 쟁점 중 하나로 꼽혀왔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가 지난 2011년 풍납토성 동쪽 성벽 발굴조사와 함께 진행한 학제간 융합연구의 성과를 3일 밝혔다.

학제간 융합연구는 축조 연대, 건설 공법, 규모, 투입 인력 등을 밝히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 최초의 프로젝트다.

풍납토성 성벽의 연대를 밝히기 위한 방사성탄소연대는 미국과 영국의 전문분석기관에서 측정됐고, 광자극발광연대는 국내에서 분석됐다. 연구소는 토성에서 채취한 같은 유기물 시 료(목탄, 목재)를 반으로 나눠 미국 제일의 방사성 연구소인 BETA ANALYTIC과 영국 스코틀 랜드 대학연합 환경연구소에 각 10개씩 총 20개를 보내 측정하고, 무기물 시료 14개는 국내 네오시스코리아에 보내 측정을 실시했다.

분석 결과를 종합한 결과 풍납토성 동쪽 초축 성벽은 3세기 중후반 착공해 4세기 중반 완공, 1차 증축성벽은 4세기 후반 시공, 2차 증축성벽은 5세기 중반 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백제 초기의 뛰어난 과학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사실도 드러났다. 성벽의 재료로 쓰인 토양의 화학 조성과 유기질 함량이 주변의 자연 퇴적토와 확연히 다르게 나타났다. 당시에 이미 지반의 특성과 구조물의 하중을 정확히 계산하고 토양의 다양한 성질을 혼합해 성토 재료의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정비된 성벽의 높이는 약 5m 내외다. 땅 속에 3m가량 묻혀있는 것을 고려하면 남아있는 높이는 대략 8m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연구 과정에서 성벽을 컴퓨터 모 형화한 결과 처음 성벽이 건설됐을 때의 높이는 10.8m였고, 두 차례의 증축을 거치면서 최대 13.3m까지 확대됐음이 밝혀졌다.

연구소 측은 “한강 변에 아파트 5층 높이까지 흙을 쌓아 총 3.5㎞ 둘레의 거대한 성벽을 완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복원된 풍납토성의 제원(체적 70만 4200㎥)과 중국 당나라 ‘통전(通典 801년)’에 기록된 인부 1인당 하루 작업량(19.95尺3=0.51㎥)을 비교했을 때, 풍납토성의 건설에는 연인원 138만 명 이상이 투입됐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인원(延人員)은 어떠한 일에 동원된 인원수와 일수를 계산해 그 일이 하루에 완성됐다고 가정하고 인 수로 환산한 총인원수를 말한다.

또 중국의 북사(北史) ‘백제전(百濟傳)’ 등에는 웅진시대(현, 공주시)의 도성 인구가 1만호(5만 명)로 기록돼 있어 한성시대(현, 서울시) 도성의 인구 규모를 대략 갈음할 수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이성준 연구사는 “현재, 전체 둘레 3.5㎞의 성 내부 20%에 해 당하는 곳만 발굴 조사 시행됐다. 성 내에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보상이나 발굴 승인이 난 곳 위주로 진행됐다”며 “앞으로 국가 소유(서울시) 중심 부분으로 발굴 계획을 세워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조사를 펼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1년 발굴조사 당시 조사한 성벽은 현재 한성백제박물관에 실제로 전시돼 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내년 초 보고서로 발간해 일반인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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