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17일 진행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주최 종교대통합 만국회의 개막식에서 평화의 아리랑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전쟁종식과 세계평화를 이루어 후대에 물려주자는 취지로 진행된 행사에는 전 세계 정치 종교 지도자 등 20만여 명이 참석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지난달 27일 북한 아리랑이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북한의 첫 인류 무형유산 등재다. 앞서 2012년 12월 한국은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라는 이름으로 등재한 바 있다. 이로써 치유‧열정‧어울림‧평화의 노래로 불리는 한민족의 아리랑이 세계 71억의 유산이 됐다.

한민족의 피가 흐르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 ‘아리랑’. 그러나 그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 배경에는 중국의 소수민족 규합정책이 있었다. 2011년 중국이 아리랑을 중국 내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이후 국내에서 중국의 ‘동북공정’ 일환이라는 비판과 함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당시 문화재청은 중국내 문화보호정책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한편 아리랑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듬해 12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우리 것이기에 당연하게만 여겼던 아리랑이 이를 계기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현재 3대 아리랑인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을 비롯해 한반도에만 총 60여종 4000여개 아리랑이 존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전승자는 약 4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아리랑 확산의 기점으로 꼽히는 1926년 발표된 영화 ‘아리랑’의 포스터.

◆한민족을 하나 되게 하는 ‘아리랑’

아리랑은 한국의 대표 민요를 넘어 이미 ‘겨레의 노래’다. 아리랑이 서민에게 널리 퍼진 기점으로 남북 모두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1926)’을 꼽는다. 일본의 앞잡이를 죽인 주인공이 포박된 채 순사에게 끌려가며 부른 아리랑은 한민족 가슴에 외세와 불의에 대한 저항의 불씨를 당겼다.

아리랑은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담는 그릇이 됐고, 역사의 고비와 순간마다 불리면서 한민족의 굽이진 삶 속에 흐르는 주제가가 됐다. 조선시대 말 경복궁 중건, 일제 강점기 철도공사, 항일 독립군의 무장투쟁, 6.25전쟁, 월드컵 축구와 서울 올림픽,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자리에서, 분단 이후 처음 성사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만찬 자리에서도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이런 이유로 머지않아 맞이할 통일의 순간에도 남북과 전 세계에 흩어진 동포들이 함께 부를 노래도 아리랑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한국어를 못하는 교포 2,3세들조차 우리말로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노래가 아리랑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민족사가 축약된 아리랑은 민족 동질성 회복의 중요 열쇠로도 평가되고 있다. 어디선가 아리랑 합창이 들린다면 그곳은 한국인이 모인 곳이며, 한국인의 동질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때라는 것이 공통적인 견해다.

◆‘아리랑 어원백설(語原百設)’과 시원

아리랑이 언제부터 어떻게 불렸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아리랑의 어원에 대해서도 설이 분분해 ‘아리랑 어원백설(語原百設)’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 기원과 어원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전적으로 부정되지 않고 나름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어느 것이든 한민족의 역사와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불려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근거로 고려 말에 이색 등의 고려유신 7인이 아리랑을 ‘도원가곡(桃源歌曲)’이라 칭해 읊은 기록이 남아있다. 아리랑 연구가 김연갑(59) 씨는 아리랑의 시원을 청동기 시대부터라고 주장한다. 한국인의 조상으로 알려진 예, 맥, 한족이 한반도에 정착하면서부터 아리랑을 불렀다는 것이다.

아리랑의 뜻에 관해서는 ▲아리랑(我離娘), ‘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 ▲아이농설(我耳聾說)로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때 백성들로부터 괴로운 말만 듣게 되니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는 설 ▲아랑전설(阿娘傳說), 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설 ▲알영설(閼英說), 신라의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변했다는 설 ▲아리랑(亞里郞)이 ‘하늘나라 마을의 낭군’ 즉 하나님을 뜻한다는 설 등이 있다.

◆격암유록 갑을가 아리랑 고개 ‘아리령’

한국의 대표 석학 양주동 박사는 전국의 지명에 나타난 아리랑 고개의 예를 찾아 아리랑은 곧 아리령(嶺)을 의미한다고 국어학적으로 분석했다. 이때 ‘아리’는 밝음, 광명의 뜻으로 북방에서 한반도로 이주해오던 우리 조상들이 높은 산을 넘어오면서 세상이 환하게 내려다보이는 고개를 ‘아리령’이라고 이름지었다는 것이다.

최근 많이 회자되는 격암유록 갑을가(甲乙歌)의 아리랑고개도 아리령으로 기록돼 양 박사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亞裡嶺有停車場 苦待苦待多情任
아리령유정거장 고대고대다정임
亞亞裡嶺何何嶺 極難極難去難嶺
아아리령하하령 극난극난거난령
亞裡亞裡亞裡嶺 亞裡嶺閣停車場
아리아리아리령 아리령각정거장

뜻을 보면 ‘험난하고 험난한 산에 수레가 머무는 곳/ 괴롭고도 괴로움이 많으나 뜻에 맡기고/ 험난하고 험난한 산 오르기 힘들고 힘이 든 산/ 어려워도 어려움을 겪으며 가는 어려운 산/ 아주아주 험난하고 험난한 산/ 험난하고 험난한 산 위에 집 수레가 머무는 곳’으로 풀이된다.

일부에서는 ‘격암유록’의 내용이 성경의 계시록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종교적으로도 풀이하고 있다. 즉, 아리(亞裡)는 하나님 계신 십(十, 亞 가운데)자가의 도가 있는 곳이며, 아리령(亞裡嶺)은 아리에 이르기 위해 넘어야할 고개라는 것이다.

격암유록에서는 ‘아리’를 십승촌(十勝村) 또는 궁을촌(弓乙村)으로도 표현했다. 이런 면에서 아리랑 곧 아리령은 하나님 계신 곳(아리)까지 가기 위해 신앙인이 넘어야할 험난한 고개로 해석되고 있다.

▲ 1953년 6.25전쟁 당시 아리랑을 반전‧평화의 노래로 불러 세계적으로 알린 미국 유명가수 피트 시거의 아리랑 삽입 앨범. ⓒ천지일보(뉴스천지)

◆‘평화의 아리랑’을 세계에 알린 ‘전쟁’

평화를 염원하는 아리랑이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었다. 아리랑은 1차,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지난 2012년 아리랑 연구가 김연갑 씨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포로가 된 조선인 2세 러시아 병사 두 명이 각각 부른 아리랑이 담긴 음반을 공개했다. 음반에 녹음된 러시아 병사는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리랑이 본격적으로 국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6.25전쟁 때였다. 미국 포크계 전설이자 반전가수인 피트 시거(Pete Seeger)는 1953년 아리랑을 자신의 첫 번째 라이브 앨범에 삽입했다.

그는 밥 딜런, 존 바에즈 등에 앞서 반전‧평화음악을 선보인 인물이다. 그가 아리랑을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소망하는 노래로 인식하고 불렀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이 앨범에서 아리랑을 이렇게 소개했다.

“지금 한국은 분단돼 전쟁을 하고 있지만, 남한과 북한이 다른 나라는 아니라고 본다. 왜냐면 그들이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자체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60여 년 전 남북한 군인은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기를 염원하며 전장에서 아리랑을 불렀다. 휴전 이후 남북은 함께하는 자리마다 통일의 날을 그리며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그리고 많은 아리랑 연구가들은 전쟁종식과 세계평화를 이룬 그날에 온 인류가 함께 부를 노래로 ‘아리랑’을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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