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농사를 지어 흉년이 들면 수확이 오르지 않으며 충성을 다 바쳐도 왕의 인상이 좋지 않으면 출세를 바랄 수가 없다. 이 말은 정말 옳은 말이다. 색으로 남자의 기분을 맞추는 것은 여자에 한한 것만은 아니다. 남자 중에도 왕을 색으로 섬긴 자가 있다. 옛날부터 색으로 왕의 총애를 받은 자가 있었는데 한(漢)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나라 고조는 호방한 성품이었는데 아첨을 잘하는 적이라는 소년을 총애했다. 또 혜제도 굉이라는 소년을 총애했다. 이 두 소년은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첨을 잘했기 때문에 총애를 받았고 황제와 동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중신이 나랏일을 건의하려면 언제나 이 두 소년을 통해야만 됐다. 그래서 혜제의 시대에는 중신들이 모두 준의(봉황을 닮은 새)의 깃을 단 갓과 자개로 장식한 띠를 매고 연지와 백분을 바르게 되었다. 이것은 소년처럼 보이게 해서 황제의 총애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이 두 소년은 뒤에 안릉(혜제의 묘)에서 여생을 보냈다. 다시 문제의 시대에 이르러 일반 신하로는 등통, 환관으로는 조동과 북궁백자, 이 세 사람이 문제의 총애를 받았다. 조동은 길흉을 점치는 점성술과 기후를 보는 기술로, 북궁백자는 자애로 가득한 덕이 있는 사람으로 총애를 받아 언제나 문제와 수레를 같이 탔다. 그러나 등통은 아무런 특기도 없었다. 등통은 촉군 남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배를 잘 만들었기 때문에 황제 전용의 뱃사공이 됐다.

어느 날 문제가 꿈을 꾸었다. 하늘에 오르려고 했으나 좀체 오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어떤 황색 모자를 쓴 사람이 밀어 주어 하늘로 오를 수가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 사나이의 옷은 등 뒤에 꿰맨 곳에 실밥이 풀려 있었다.

잠을 깬 문제는 배를 타고 궁중 안에 만들어 놓은 큰 연못 속에 있는 점대라는 누각으로 건너갔다. 문제는 꿈속에서 나를 밀려 올려 준 자는 누구일까 생각하면서 뱃사공들을 둘러보자 그중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옷의 등 뒤를 꿰맨 곳의 실밥이 풀어져 있는 것이 꿈속에서 본 그 사람과 꼭 닮은 자였다. 즉시 그를 불러 이름을 물었다. 성은 등이고 이름은 통이라 했다. 등은 등(騰)과 통한다. 결국 하늘로 오른다는 뜻이다. 문제는 몹시 기뻐했다. 그 뒤에 등통에 대한 문제의 총애는 날로 깊어졌다.

등통은 예의 바르고 성실하게 궁궐에서 일했으며 공무 이외에는 외부 사람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휴가를 주어도 외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문제의 총애가 점점 깊어져서 수십 번에 걸쳐 막대한 돈을 받고 장관 대우의 관직에까지 승진됐다.

태자가 문안하러 왔을 때 문제는 종기를 빨라고 명령했다. 태자는 종기를 빨았으나 얼굴을 찌푸렸다. 뒤에 태자는 등통이 언제나 문제의 종기를 빨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뒤 태자는 등통을 미워하게 되었다. 문제가 세상을 떠나고 태자가 즉위하여 경제가 되자 등통은 관직에서 물러나 집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등통이 나라의 법을 어기고 만든 동전을 국경 밖으로 운반하고 있다”고 밀고한 자가 있었다.

즉시 관리에게 등통을 체포하라고 명령하고 엄중히 취조한 결과 그의 죄가 뚜렷하게 밝혀졌다. 등통은 재산을 모두 몰수당했다. 그 밖에도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했다. 등통은 무일푼이 되었다. 경제의 누이가 되는 장 공주가 돈을 대어 주었는데 그것마저 관리가 몰수해 버려 등통의 손에는 갓을 꽂을 비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장 공주는 할 수 없어 옷과 먹을 것을 보살펴 주었다. 결국 등통은 동전 한 푼 가지지 못한 채 남의 신세만 지다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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