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카일라 왈스트롬 교수는 1997년에 수업 시작시간을 아침 7시 15분에서 8시 40분으로 늦춘 미니애폴리스고교 학생 수천 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등교시간을 늦춘 결과, 출석률과 학기를 쉬지 않고 연속해서 등록하는 비율이 높아졌고 성적도 향상됐다. 우울증 증세도 줄어들었다. 왈스트롬 교수는 “덜 졸린 학생들이 학교에 더 오래 남아 있고 배울 준비도 더 잘 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 결과는 2001년 8월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하면서 많이 알려졌고 비슷한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학교 등교 시간을 늦추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실제로 알링턴 카운티에서는 고교 수업시간을 아침 7시 반에서 8시 15분으로 늦추었고, 몽고메리 카운티 등에서도 학부모들이 수업시간 변경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상당수 교육 당국에서는 경제적 비용 문제와 함께 수업시간 변경이 학생들의 성취도와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확증이 없다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올해 초 미국 켄터키대학교 연구팀이 지역 공립 초등하교 718곳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았더니, 일찍 등교하는 학생일수록 학습 능력이 떨어졌다.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이 일찍 등교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수학 과학 읽기 쓰기 등의 성적은 가난하지만 늦게 등교하는 학생들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수업 시간이 1분 늦어질 때마다 수업 참여율은 0.2% 향상된다는 결과도 얻었다. 연구팀은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은 잠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초․중․고교의 등교시간이 늦춰지고 있다. 경기와 전북에 이어 서울과 광주, 강원 제주에서도 내년부터 등교시간을 늦추기로 함에 따라 전국 초․중․고교생의 절반 가까이가 여유롭게 등교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은 조금 더 잠을 잘 수 있게 돼 몸과 마음이 한결 더 가뿐해지고, 아침상을 함께 할 수 있어 가족 간의 정도 더 깊어질 것이다.

맞벌이 부부들은 등교 시간이 늦어지면 아이를 챙겨주기 힘들다며 반대하기도 하지만, 등교 시간 변경이 성적 하락으로 이어질까 걱정하는 부모들도 많은 게 사실이다. 아이들 성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잠이 부족해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선생님 말씀 하나라도 더 늦는 게 백 배 낫다.

우리 아이들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학원 숙제다 뭐다 해서 밤늦도록 잠을 재우지 않을 뿐 아니라 0교시 수업이라 해서 새벽별보고 학교에 가야 하니 늘 잠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 수업시간에는 대놓고 엎드려 잔다. 잠이 부족하니 성장에도 지장이 있고 체력과 면역력도 떨어진다. 부모들은 자녀가 키도 크고 공부도 잘 하기를 바라지만, 성적 때문에 잠 못 드는 아이들은 고달프기만 하다.

‘저녁이 있는 삶’이 유행어처럼 등장했지만 ‘저녁이 있는 가족’들은 드물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바쁘고, 그래서 가족들은 늘 엇갈리고 ‘저녁이 있는 삶’을 공유하기가 힘들다. 등교시간이 늦어지고 있으니, ‘아침이라도 있는 삶’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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