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서민의 기호품인 담뱃값을 정부가 거의 더블(double)로 올렸다. 서민 흡연자들의 불만이 들끓을 것은 물어보나 마나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재원 때문에 큰 구멍이 날 지경인 국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어야만 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담뱃값을 올리고 나선 것은 일을 쉽게 하기 위한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이는 절대로 창조적이라거나 서민의 부담을 걱정하는 태도가 아니다.

증세(增稅)는 경제를 살려 세금이 저절로 더 걷히게 함으로써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국민 부담을 지우지 않는 길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경제는 세금이라는 황금알을 쑥쑥 낳아줄 형편이 되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세수(稅收)를 늘리는 방법으로 더 큰 고민이나 더 치열한 궁리 없이 안이하게 서민을 봉으로 삼고 나선 것은 정부의 실인심(失人心)을 재촉하는 일의 하나다. 더구나 이것이 끝이 아니요 시작에 불과하다고 볼 때 앞으로 정부와 국민의 마찰은 험난한 과정을 예고하는 것이 된다.

담뱃값을 인상하면서 둘러댄 정부의 핑계는 너무나 얄밉다. 담뱃값을 올리면 흡연율이 낮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민 건강이 증진될 것이라는 것이 그 논리였지만 솔직하지 못했다. 차라리 이렇게 돌리지 말고 절박한 국가 재정 때문에 담뱃값이라도 우선 올리고 봐야겠다고 정곡을 치고 들어갔다면 설득력이 더 컸을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국민은 설마 했다. 내 손으로 뽑은 선출직 국회의원들이 있는 국회 심의 과정에서만은 서민의 의중이 반영됨으로써 인상폭이 대폭 깎일 것이라고 안심했었다. 귀족은 서민의 고통을 안다고 말할지라도 추상적인 차원에 머물 뿐이다. 선거 때는 가장 낮은 서민으로 행세하는 것이 국회의원들이다. 하지만 고액 연봉과 국회의 특권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버리면 담뱃값 몇 푼은 그들의 고통이 아니다. 그것이 서민의 삶의 무게에 바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오불관언하는 귀족이 되고 만다. ‘더블’로 올리는 담뱃값을 통과시켜준 국회의원들은 흡사 그 같은 귀족이었다.

‘낙타 등을 부러뜨리는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The last straw that breaks the camel's back)’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하중이 한계에 다다르면 아무리 인내심이 강하고 튼튼한 등을 가진 낙타일지라도 최후의 지푸라기 하나 무게를 못 이기고 그 등이 부러지고 만다는 말이다. 귀족적인 생활 습성이 몸에 밴 사람들은 담뱃값 몇 푼이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서민에겐 결코 그렇지가 않다. 가계 빚이 1천조 원 이상으로 집계된다. 그 금액이 얼마만한 것인지 도대체 짐작조차 할 수도 없지만 자칫 국가적 재앙을 낳을 규모라는 공포심이 앞서는 것은 틀림없다. 굳이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실생활에서 빚이 없는 집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한 번 진 빚을 벌어서 갚을 수만 있다면 다행이지만 빚을 내어 빚을 갚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을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산다. 그렇기에 딱한 처지를 보아도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이 없다시피하고 그래서 돈을 꿀 수도 없으니 삶의 무게를 더해주는 무엇이 서민의 등을 부러뜨리는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가 될지 모르는 위기의 시대가 지금이다. 이렇게 본다면 담뱃값 몇 푼이라고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해진다. 민생(民生)이 이러할 것인즉 위정자들과 정책 담당자들은 민생을 항상 서민의 입장에서 헤아려 주어야 하지만 그런 공복의 사표(師表)들은 어디에 숨어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국운을 낙관하는 것을 허망한 일이라 할 수는 없으나 그것이 확실한 근거를 갖는 것이 되려면 국민의 삶이 좀 더 편하고 편안해져야 한다. 이에는 국민 각자의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지만 거기에 위정자 정책담당자들의 사심 없는 헌신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도 더 강조할 것이 없다. 무엇이 먼저여야 하는 것을 따지기보다 서로 ‘먼저(first)’를 다툰다면 이상적이지만 그렇더라도 동기 부여는 리더십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우리 형편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국민 탓을 할 것인가.

무슨 청와대 문건 파동인가 하는 것으로 나라 안이 와글와글하다. 누가 누구를 만나고 연락하고의 기초적 사실 관계를 딱 잡아떼던 당사자들의 말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막연한 소문은 헛소문으로만 끝나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래서 문건 파동은 국정에 쏟아야 할 관심들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마는 정국의 블랙홀이 돼간다. 국정 운영의 심장부가 들썩이고 심지어는 정쟁으로 비화돼가는 양상이다. 더구나 시정(市井)의 화제가 온통 뜬구름 같은 그것으로 요란 법석이어서 그곳에는 정연한 ‘통치’도 ‘법치’도 없다. 일반인의 입에서 입으로 번지는 들불 같은 입소문은 매체의 선정성이 그것을 더욱 부채질함으로써 그것을 잠재우려는 검찰 수사나 정부의 진화 노력은 거대한 산불에 떨어뜨리는 몇 방울의 소화수(消火水)에 불과한 느낌을 받는다. 역부족이라는 말이다.

거대한 산불은 선제 대응이어야지 뒤따라가면 잡히지 않는다. 국민에게 검찰 수사 결과만을 지켜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 결과는 어떻게 되든지 국민을 향해 진실을 담은 메시지를 소문의 중심에 있는 당국이나 당사자가 밝혀야 한다. 그리고 명심할 것이 있다. 명심보감이 이르는 말 ‘나라가 바르면 천심인 민심이 순하고, 관이 맑으면 민심이 편안하다(國正天心順 官淸民心安/국정천심순 관청민심안)’는 말이 그것이다. 뜬소문은 단속으로만은 없어지지 않는다. 나라가 바로 가는 것이 보이면 국민은 아무리 들불처럼 번지는 뜬소문이라도 결코 그것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라가 바로 가는 것이 만파식적(萬波息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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