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초로 2개의 노벨상을 받은 20세기 위대한 여성과학자 ‘마리 퀴리(퀴리 부인, 1867~1934)’의 젊은 시절 모습이 처음 공개됐다. 파마머리가 아닌 자연 곱슬머리이며 망사천으로 된 의상을 입고 눈매는 열정이 가득한 모습으로 응시하고 있다. 뒷면은 가죽으로 된 고급사진이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퀴리 부부 미공개 사진도 공개
우리나라 여성 중에서도 노벨 과학상 배출 염원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1903년 노벨 물리학상과 191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최초로 2개의 노벨상을 받은 20세기 위대한 여성과학자 ‘마리 퀴리(퀴리 부인, 1867~1934)’의 젊은 시절 모습이 처음 공개됐다.

본지는 정성길(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으로부터 퀴리 부인의 젊은 시절 미공개 사진을 입수했다. 그간 퀴리 부인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사진은 거의 없었던 것이 사실. 젊은 시절 최초 공개되는 퀴리 부인은 머리카락부터 특이하다. 파마머리가 아닌 자연 곱슬머리이며 망사천으로 된 의상을 입고 눈매는 열정이 가득한 모습으로 응시하고 있다. 사진 둘레는 금색문양으로 돼 있으며 뒷면은 가죽으로 된 고급사진이다.

정성길 관장은 약 30년 전 프랑스 엔틱 골동품상점에서 직접 구입했다. 당시 정 관장은 앞면만 보고는 누군지 몰랐으나 가죽으로 입혀진 것을 보곤 보통 인물이 아닌지를 직감해 구입했다. 그리고 이후에야 그 사진의 주인공이 퀴리 부인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정 관장은 그의 젊은 시절 사진과 함께 노벨상을 받고 난 이후 찍은 사진, 남편 피에르 퀴리의 사진까지 공개했다. 두 사진이 타원형으로 된 것으로 보아 똑같은 사진첩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같은 사진관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퀴리 부인의 사진은 이미 공개된 사진과 비슷한 의상을 입고 있으나 사진구도가 다르며, 남편 역시 턱수염이 별로 없는 기존 사진들에 비해 덥수룩하다.

▲ 노벨상을 탄 이후의 퀴리 부인 모습(왼쪽). 이미 공개된 기존 사진과는 의상은 비슷하나 사진 구도가 다르다. 오른쪽은 남편 피에르 퀴리의 모습. 턱수염이 별로 없는 기존 사진들에 비해 매우 덥수룩한 모습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1895년 앙리 베크렐이 우라늄에서 방사능을 발견하자 퀴리 부인은 남편과 함께 방사능 연구에 몰입했으며 그 결과 우라늄보다 훨씬 강한 방사성을 내는 물질인 폴로늄을 발견하는 성과를 낸다. 이에 1903년 베크렐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06년 남편 피에르가 마차사고로 죽는 아픔을 겪었으나 연구를 계속해 라듐(라디움)에 대한 공식 표준을 정하는 업적을 남겼다. 다만 연구 도중 방사능에 노출돼 백혈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만년을 보내다 생을 마감한다.

정 관장은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노벨 과학상을 받게 될 경우 이 사진을 발표하려고 그간 아껴뒀다. 그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퀴리 부인을 밝힘으로써 부인처럼 우리나라 사람이 업적을 남겨 긍지를 되찾자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허나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기에 공개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관장은 “박 대통령도 공대를 나왔고, 현재 우리는 최첨단 과학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 과학자 중에서도 노벨상을 받는 위대한 인물이 나오기를 희망한다는 의미로 사진을 공개하게 됐다”며 30년 만에 내보인 이유를 설명했다.

위대한 여성과학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퀴리 부인. 정 관장의 바람대로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조만간 위대한 과학자가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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