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천 년 전 유대 땅으로 가 보자. 당시 유대는 로마의 속국이었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라는 종교지도자들이 있었지만 부패하고 타락해 종교말세를 만난 상태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예수가 왔다. 예수는 유대 땅에 온 후,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오는, 즉 기원(BC~AD)이 바뀌었어도 시대를 분별치 못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회개를 요구했다. 하지만 소경과 귀머거리가 된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그 시대를 분별치 못하고 회개하지 않아 멸망받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2천 년이 지난 오늘날도 그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모든 성인들이 예언해 놓은 하나님의 역사가 서기동래한 이때에, 이 시대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2천 년 전 이스라엘 역사 속에 담긴 성경 역사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먼저 성경에 등장하는 ‘헤롯왕’이란 인물에 대해서다. 2천 년 전 성경 속에는 4명의 헤롯왕이 있다. 첫 번째로 예수 나심을 알고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 왔을 때 두 살 이하의 어린이를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왕으로 헤롯 왕가의 헤롯대왕(大王)이 있다. 두 번째로 세례요한의 목을 벤 왕이 헤롯왕 안티파스다. 세 번째로 베드로를 잡아 가두고 벌레가 먹어 죽은 헤롯왕 아그립바 1세며 헤롯대왕의 손자다. 네 번째로 바울이 잡혀서 심문을 당할 때 그 앞에 섰던 헤롯왕 아그립바 2세다.

여기서 주목할 헤롯은 바로 두 번째 헤롯왕으로 세례요한의 목을 벤 안티파스다. 이 헤롯왕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14장에 잘 설명돼 있다. 세례요한이 유대인들의 분봉왕인 헤롯의 미움을 사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왜냐, 동생의 여자 즉,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았다는 것이 옳지 않았다라고 지적한 데서다. 이에 분봉왕 헤롯이 세례요한을 죽일 궁리를 하던 차에 연회가 베풀어졌으며, 이날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는 헤롯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춤을 췄다. 그러자 헤롯은 살로메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한다. 이에 살로메는 엄마에게 무엇을 달라 해야 하는가를 묻게 되고, 헤로디아는 자신들의 잘못된 만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세례요한의 목을 달라고 청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헤롯은 그 청을 들어주게 되고, 딸 살로메의 손에는 세례요한의 잘린 목이 소반에 담겨 주어진다.

세상적으로는 분명 인면수심(人面獸心, 사람의 얼굴인데 짐승의 마음을 가졌다는 의미)이 맞다. 하지만 하늘의 사명을 받은 자가 세상일에 참견하는 일이라는 데는 간과했다. 이 대목에서 꼭 짚어야 할 일이 있다. 2천 년 전 세례요한은 하나님이 보낸 목자로서 약속의 목자인 예수의 길을 평탄케 하고 증거해야 하는 길 예비자의 사명을 받은 자다. 물론 그래서 마태복음 3장을 통해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광야에서 외쳤고, 또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일을 간섭하다가 죄를 짓고 옥에 갇힌 세례요한은 그의 제자들을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며 의심에 찬 질문을 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라고 예수가 제자들에게 일러준 바대로 세례요한과 그 제자들의 믿음은 흔들리는 갈대같이 이미 떠나갔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세례요한의 목 베임 당함은 세상 주관자인 헤롯왕을 들어 자기사명을 저버린 데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함께했던 세례요한은 배도하므로 하나님 대신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는 당시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짓밟힘을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명심할 것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고하던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은 뱀이요 독사의 새끼들이였으니 바로 사단이요 멸망자들이였음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마 23:33, 계 12:9, 계 20:2).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던 세례요한의 제단은 삯을 위해 종교지도자들인 뱀과 하나 됐으니 배도자요, 뱀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삼키고 멸망시켰으니 멸망자요, 멸망 받는 일이 있으니 구원자 예수가 필요했고, 구원의 역사가 있게 된 것이니 참으로 이치 중에 이치가 아닌가.

이는 요한복음 10장을 통해서도 예수님은 비유적으로 잘 설명해 놨다. 삯군 목자(세례요한)와 이리(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와 선한목자(예수)에 관한 비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이 동양의 예언가는 재림의 때인 오늘날도 ‘삼인일석(三人一席)’의 사건이 또다시 나타날 것을 미리 말해 놨다. 2천 년 전과 같이 배도와 멸망과 구원의 역사가 한 장소에서 일어날 것을 잘 말해 놨고, 이미 일어났음을 알리고 있으며, 나아가 새로운 기원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시대를 분별 못하는 이 시대를 향해 알리고 싶다. 아니 소경과 귀머거리 된 이 시대를 향해 호소한다. 서기동래한 대한민국에서도 바로 이 같은 배도와 멸망과 구원의 역사가 나타난 지 30년이 지났음을 말이다.

오늘날 이 시대에 나타난 배도와 멸망과 구원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천지시론 (2)편을 통해 나타난 실상을 근거로 밝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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