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생전 사진. (사진제공: Audrey Hepburn Children’s Fund)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내가 이런 얼굴을 가지고 영화에 출연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해봤어요.”

20세기를 대표하는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 5. 4~1993. 1. 20)은 가장 겸손하고, 사랑스럽고, 따뜻한 만인의 연인이었다. 동시에 아내, 두 아들의 어머니, 아프리카 난민 어린이들의 어머니로 살았다. 21세기인 지금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랑받고 있는 그의 삶을 둘째 아들 루카 도티(Luca Dotti)를 통해 들어봤다.

지난달 28일 오프닝 행사를 시작으로 2015년 3월 8일까지 100일간 세계 최초로 오드리 헵번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특별전 ‘오드리 헵번, 뷰티 비욘드 뷰티(총감독 최요한)’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다. 본격적인 전시 관람 이틀 전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아들 루카 도티가 말하는 오드리 헵번의 삶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 오드리 헵번의 둘째 아들이자 Audrey Hepburn Children’s Fund(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 회장인 루카 도티(Luca Dotti). (사진제공: Audrey Hepburn Children’s Fund)
루카 도티는 “전시 주제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주제 속에는) 외부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아닌, 패션이나 영화에서 어머니가 보여준 외면적인 것이 아닌, 어머니가 타인에게 본 것과 아이들에게서 본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며 “외면과 내면을 더욱 강하게 할 수 있음을 이번 전시 주제에서 함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드리 헵번이 생전에 늘 검소하고 겸손한 어머니였다고 회고했다. 이는 오드리 헵번이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기로 결심한 부분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는 70년대 초부터 유니세프와 협력 활동을 시작했다. 80년대 중반에 실제로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활동과 동시에 친선대사를 하지 않고 시간이 걸린 것은 자신이 세계 아이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주저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드리 헵번은 영화배우와 패션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등의 언론 노출은 피해왔다. 하지만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활동하면서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

루카 도티는 “어머니는 영화배우로서 자신의 경험과 얼굴, 목소리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필요한 이슈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으로 친선대사를 수락했다”며 “미디어의 힘을 이용해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하는 이슈에 내가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많은 사람이 오드리 헵번을 아름다운 영화배우로 기억하지만, 루카 도티가 기억하는 오드리 헵번은 ‘어머니’였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였다. 어느 날 사람들이 어머니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상태에서 알게 된 후 정말 놀랐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깨달은 것은 가족뿐만 아니라 대중과도 함께한 분이었다는 것”이라고 회상했다.

루카 도티는 여러 해 동안 ‘어머니 오드리 헵번’과 ‘대중 아이콘 오드리 헵번’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더 알고자 하는 과정을 겪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해) 더 알고자 할수록 놀랍고 단순한 사실을 알게 됐다”며 “집 안에서 어머니와 집 밖에서 어머니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며, 밖에서도 집에서와 같이 어머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 장점이자 강점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2대 회장으로 있는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Audrey Hepburn Children’s Fund)’은 형인 션 페러와 함께 오드리 헵번 사후에 설립된 아동보호기구단체다.

루카 도티는 “어머니는 형과 내가 자신의 삶을 자주적으로 결정해 살기를 항상 바라셨다. 여느 부모들처럼 일하면서 번 돈을 가족을 위해 자식 교육을 위해 썼다. 또 자신이 전쟁을 겪으며 아주 가난하기도 했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전 세계 아이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주고자 했다. 형과 함께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이어가고자 재단을 설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끝으로 “이번 전시를 관람하는 모든 사람이 오드리 헵번이라는 한 사람의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드리 헵번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영국계 아버지와 네덜란드 남작가문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1929년 5월 4일에 태어났다. 6살 후부터 집을 떠난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네덜란드, 영국을 떠돌며 자랐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나치 점령 아래에서 가난에 굶주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언젠가 그는 “전쟁 동안 튤립 아홉 근을 먹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치 치하에서 살며 극심한 고난을 목격해 ‘안네의 일기(1959)’ 캐스팅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헐리웃 유명 스타로 활동하면서 1988년에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된 후 세계 곳곳의 구호지역을 다니며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세상에 알리는 데 힘썼다. 1992년 11월 직장암을 선고받고, 1993년 1월 63세를 일기로 고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오드리 헵번 생전의 정열적이고 진심 어린 구호활동은 유니세프와 민간 구호단체가 함께 제정한 ‘오드리 헵번 평화상’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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