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의 변신은 ‘무죄’
우유의 변신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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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유명 브랜드와 손잡고 커피시장 두드린다

어린 장금이가 친구 연생이와 퇴선간에 들어갔다가 임금님의 밤참을 엎질렀다. 그날 임금님이 드실 밤참은 바로 ‘타락(駝酪)죽’. 타락은 오늘날의 우유로 당시 왕이나 양반 이상 계급에서나 맛볼 수 있는 고급 영양식이었다.

1970년대 정부는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면서 ‘우유 대중화’를 선언했고 그 후 딸기우유, 초코우유, 바나나우유뿐만 아니라 떠먹는 요구르트, 액상 요구르트, 치즈 등 가공 유제품 종류가 늘었다. 소수만 접할 수 있었던 우유가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정부의 우유소비 장려와 함께 계속해 오름세를 보이던 우유시장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가공업체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문을 차례로 닫았다. 당시 낙농조합 10곳, 유업체 7곳이 유가공 사업을 포기하면서 현재 유가공 회사와 협동조합의 수는 20곳 정도 남아 있다.

국내 낙농가 수를 살펴보면 우유가공을 막 시작했던 1962년 676가구, 1985년 4만 3760가구로 정점을 찍었다가 올해 6월 6879가구로 줄어들었다. 낙농가 수가 감소한 데는 도시 근교에 있던 낙농가들이 도시개발의 여파로 고향을 떠나 직업을 바꿨기 때문이다.

젖소 사육 수도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1962년 젖소 1956두, 1995년 55만 3467두, 2009년 6월 현재 43만 991두로 줄었다. 하지만 우유생산량은 증가했다. 이는 사육 규모가 커지고 젖소 개량 사업으로 젖소 한 마리가 만들어내는 우유량이 증가한 데 있다. 낙농가 수가 줄어도 낙농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다양한 유제품이 출시됐기 때문이다.

▲ 다양한 유제품. ⓒ천지일보(뉴스천지)

196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유제품은 단순 살균한 백색우유가 주를 이뤘지만 1960년대 중반 영·유아를 위한 조제분유와 함께 연유, 버터, 가공유가 개발됐다. 1970년대에는 생크림, 액상요구르트, 멸균우유, 자연·가공 치즈, 푸딩, 탈지분유가 나왔으며 1980년대에는 떠먹는 요구르트, 마시는 요구르트, 유당분해우유, 저지방우유, 슬라이스 치즈, 혼합과즙 음료 등이 개발 및 판매됐다.

1990년대 이후 소비자들의 다양한 입맛을 잡기 위해 하얀 우유는 저지방우유, 요구르트는 변비에 좋은 요구르트 등 건강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에는 우유업체들이 커피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우유 조흥원 조합장은 “예전엔 흰 우유를 좋아했으나 요즘은 커피우유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기 한파였던 지난해 차(茶)음료나 음료시장은 마이너스 성장이었으나 커피음료시장은 요구르트와 함께 매출이 올랐다.

매일유업의 카페라테는 올 상반기 지난해보다 35~40% 판매를 올렸다. 여기에 지난 7월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인 폴 바셋(Paul Bassett)을 영입해 ‘커피 스테이션 폴 바셋’이라는 에스프레소 바를 열었다. 여기에 서울우유는 일본의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 ‘도토루’와 손잡고 ‘서울우유 도토루 더 클래식’을 선보였다. 서울우유는 이미 시판용 스타벅스 커피를 출시한 바 있다.

소비자 한미애 씨는 “유제품이 다양해지면서 고르는 즐거움이 있다”며 “낙농가들이 어렵다고 들었는데 다양한 제품으로 우리 낙농업을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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