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개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위에서 왼쪽·가운데, 아래 왼쪽)과 예불대참회문(禮佛大懺悔文) 옥책(玉冊). 준풍(峻豊)3년(고려 광종 13년. 962AD)과 가희(嘉熙)3년(고려 고종26년. 1239AD)의 간기가 나타나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부모은중경 새긴 ‘옥책’… 본지 통해 최초 공개
성남 수정구 민간인 소장, 증조부로부터 물려받아
학계 ‘유례없는 유물’ ‘중요문화재급’으로 평가
고려 고종代 ‘金文’으로 쓴 ‘예불대참회문’ 함께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지금까지 유례가 없던 고려 초기 광종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옥책(玉冊)이 처음 발견됐다. 희귀 유물로, 학계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부모은중경은 불교 경전의 하나로,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과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불교국가였던 고려보다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많이 간행됐다. 고려 말에 간행된 부모은중경은 몇 점뿐이다.

현존하는 옥책은 고려 말 조선시대 왕의 즉위나 책봉을 기념하는 장엄구로 남아 있고, 불경으로는 사례가 없었다. 다만 지난해 고려대 정광 교수에 의해 학계에 보고된 ‘월인석보(月印釋譜)’가 유일하다.

특히 옥책 말미에 ‘홍원사 준풍3년 종(弘圓寺 峻豊 三年 終, 고려광종 13년 962AD)’이라는 간기가 보여 ‘불일사 정통 십이년 종(세종29년 1447AD)’이라고 나오는 월인석보와 형식이 같음을 보여 주고 있다. 홀 모양의 옥을 다듬어 2개의 투공과 3개의 원문을 음각해 글자를 배치한 것도 비슷한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고려 초~조선 초기 옥책의 형태와 계보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 이번에 발견된 고려 광종대(代)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천지일보(뉴스천지)

세종 때 월인석보 옥책을 찾아 국문학계에 발표한 정광 고려대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고려 초기 옥책 부모은중경을 확인한 결과 서체, 금니 등 제작수법, 자획의 뭉쳐진 녹소들을 비롯한 불경의 품격이 세종대 만들어진 옥책 월인석보와 같은 형태를 보인다. 옥책의 계보를 알려준 계기가 된 값진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선시대에는 사용되지 않은 글씨가 보인다. 앞으로 고려 초기의 요(遼)시대 자전(字典)인 용감수경(龍龕手鏡)에서의 확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며 “곧 있을 정례 학회에 부모은중경 옥책의 발견을 공식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옥책은 성남시 수정구 민간에 소장돼 있다가 본지 취재팀에 의해 최초로 발견된 것으로, 소장자가 증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유물이다.

▲ 50배로 확대한 부모은중경 글씨의 금니 ⓒ천지일보(뉴스천지)
부모은중경 옥책은 모두 27매로, 1매에 4행씩 종서로 음각돼 있다. 크기는 4.5㎝×30㎝(자경 1㎝)이다. 옥책 2번은 결실됐으며, 옥책 3번은 소장자가 정리하는 중에 살짝 금이 갔으나 내용 해석에는 문제가 없다.

소장자는 “증조부께서 불심이 깊었던 분이었는데, 수집을 종종하셨다고 들었다. 어머니를 통해 전해 받을 당시 옥책 꾸러미는 가죽 가방 안에 있었다. 한지에 말아 있는 상태로 번호가 맞춰져 있었는데, 살펴보니 2번은 결실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소장자는 “옥책을 감싸고 있던 한지와 삼베 등 낡은 것을 정리하고 자칫 깨지기 쉬워 조심히 따로 보관해 놓았다”고 말했다.

부모은중경 옥책과 함께 금문(金文)으로 쓴 ‘예불대참회문(禮佛大懺悔文, 크기 4.5×25㎝)’ 옥책 25매도 함께 발견됐다. 학계는 예불 대참회문에 대해 ‘전서(篆書) 이전에 유행했던 금문’으로 평가하고 있다. 예불대참회문에는 ‘가희(가희. 남송 이종) 3년(고려 고종 26년 1239AD)’이라는 명기가 보이며, 부모은중경보다는 약간 작다. 뒷면에는 한 마리의 용으로 추정되는 무늬가 있다.

부모은중경 옥책은 확대경으로 볼 경우 글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금니(金泥) 흔적이 완연한 상태다. 글씨에는 붉은 녹이 슬어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알려준다. 글씨는 신라~고려 초에 유행했던 구성궁체와 닮았으며, 신라 후기 최치원이 짓고 직접 쓴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신라진성여왕 원년 887AD), 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 비문(고려 광종 19년 965AD)의 글씨와 비슷하다.

부모은중경 옥책은 옥을 장방형 홀 모양으로 다듬어 상·하단에 2개의 투공과 3개씩의 원문을 배치했으며, 각 면마다 해서체와 행서체를 혼용해 세로로 4행씩 음각했다. 뒷면에는 3단으로 구름무늬를 음각하는 등 모두 27매(2번 결실)로 수 천 자에 달하는 부모은중경 전문을 각자하는 방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중국산이 아닌 고려시대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수암옥을 이용해 음각한 것도 가치가 있다.

▲ 6세기 고대 중국 수나라 옥책 ⓒ천지일보(뉴스천지)

중국 도자기 분야 전문가인 김희일 홍산문화도자박물관장은 “중국 박물관을 통해 오랫동안 옥책을 찾아봐도 이번에 발견된 월인석보나 부모은중경 같은 형태의 옥책은 찾지 못했다” 며 “부모은중경은 매우 귀중한 유물로 보이며, 무엇보다도 월인석보 옥책의 앞선 시대 계보를 찾았다는 데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원로 서예가이자 전서와 고대의 해서, 행서 연구 최고 권위자인 박 영진 경기대예술대학장 겸 교수는 “갑골문과 전서 중간 시기에 유행했던 금문(金文)으로 예불대참회문을 각자한 것은 그 가치가 지대하다”고 평가했다.

옥책의 내용도 기존에 알려진 부모은중경과 차이를 보인다. 고려 말 목판본인 보물 제705호 부모은중경(고려 우왕 4년 1378AD, 리움미술관 소장)과 조선 전기에 간행된 보물 제902호 부모은중경(아단재단 소장), 보물 제1125호 부모은중경(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충북도유형 문화재 제224호 불설대보부모은중경(조선 태종 1407AD)에 간행된 내용과 차이가 있으며, 조선시대 불경에 나오지 않는 ‘俱’ ‘爾’ ‘个’ 글자가 있다.

두 옥책을 직접 확인한 강우방 전 경주박물관장(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은 “지금까지 유례가 없는 옥책 자료로, 진품으로 보인다. 왕실에서 사용한 유물 같다”고 말했다. 이어 “매우 희귀해 문화재급으로 평가되며, 서지학 분야의 연구가 뒷받침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전 국전 심사위원이며 원로 서예가인 박영진 경기대예술대학장 겸 교수는 “부모은중경과 예불대참회문 옥책은 준풍 3년과 가희 3년 등 고려시대 간기가 있고, 현재 사용하지 않는 글씨 등이 산견돼 매우 귀중한 유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서지학과 불경전문가의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박 교수는 “예불대참회문에 나오는 글씨는 품격이 있으며, 전서 이전의 금문으로 불경에 금문을 사용한 유례없는 유물이다. 고려시대 불경 연구의 희귀자료”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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