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간도영유권 100년 시효설의 긍정적 수용 제의(上)
[기고]간도영유권 100년 시효설의 긍정적 수용 제의(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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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명지대학교 명예교수

Ⅰ. 서론

중국정부의 이른바 ‘동북공정’의 실체적 핵심은 한국의 영토인 간도의 영유권을 공고히 하려는 중국의 전략임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면서 간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각계 각층으로 폭 넓게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간도의 영유권 회복을 하여야 한다는 애국적 영토회복촉구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 운동은 이른바 ‘간도영유권 100년 시효설(이하 ‘100년 시효설’이라 한다)’에 기초하여 정부당국에 대해 대중국 항의의 긴급성을 강력히 제의하고 있다.

2005년 10월 17일 서울특별시 의회가 채택한 ‘간도협약 원천무효에 따른 파기촉구 결의안(의안번호 제838호)’도 ‘100년 시효설’에 근거한 것이며(동결의안 ‘2. 제안이유’), 간도찾기 운동본부의 뉴욕지부 김태영 회장의 2008년 4월 15일의 ‘간도의 영유권회복에 관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원서’도 ‘100년 시효설’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에 전개되고 있는 간도영유권 회복을 위한 여러 주장도 대부분 ‘100년 시효설’에 근거한 것이다.

이상의 간도영유권회복을 위한 정부당국에 대한 대중국 항의의 제안과 주장에 대해 정부당국은 이를 묵살하고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 아니하고 있으며, 그 이유로 ‘100년 시효설’이 국제법상 근거 없는 것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글은 ‘100년 시효설’의 잘못된 표현을 바로 잡아 보려 시도된 것이다. 정부당국은 ‘100년 시효설’의 내용을 보정(補訂) 수용(受容)하여 조속한 기일 내에 간도영유권에 관해 대중국 항의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는 것을 제의해 보려 한다.

 

Ⅱ. 간도협약의 체결과 간도협약의 무효

1905년 9월 5일 ‘포스모스강화조약’의 체결에 따라 일본의 승리로 종료된 러일전쟁의 결과로 득세한 일본은 제1단계로 한국침략을 위해 1905년 11월 18일 한국과 ‘을사보호조약(이하 ‘을사늑약’이라 한다)’의 체결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여 한국 침략의 법적 기반을 구축하고, 제2단계로 만주침략을 위해 1909년 9월 4일 청국과 ‘청일간도협약(이하 ‘간도협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여 청국으로부터 만주철도 부설권과 무순관상 체광권을 취득하는 등의 대가로 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간도를 청국에 양도했다.

간도는 두만강 이북 토문강 이동의 지역인 ‘동간도’와 압록강 이북지역인 ‘서간도’로 구성된 남만주 지역을 말하며, 넓게는 ‘동간도’와 ‘서간도’의 북방지역인 ‘북간도’를 포함하는 전 만주지역을 말한다. 동 협약의 규정에 따라 한국의 북방 경계선이 간도의 북방경계선이 아니고 압록강과 두만강의 경계선으로 정하게 되었다.

일본이 청국과 ‘간도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기초인 ‘을사늑약’은 강박에 의해 체결되어 무효이고 또 그 무효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 의해 확인되었다. 따라서 무효인 ‘을사늑약’에 근거한 ‘간도협약’도 청일 간에 무효인 것이다. 그리고 이 무효는 1952년 ‘중일평화조약’ 제4조의 ‘중일 양국은 1941년 12월 9일 이전에 중·일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협약 및 협정을 무효로 한다’는 규정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리고 ‘간도협약’을 체약당사국이 아닌 제3자인 한국에 대해서는 무효력인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 간에 ‘무효’이고, 한국에 대해 ‘무효력’인 ‘간도협약’에 근거한 중국의 간도점거는 법적 근거가 없는 불법점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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