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북한 땅굴이 서울은 물론이고 대전 목포 거제도까지 뚫려 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목숨까지도 버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군 당국이 부인하는데도 그 사람은 그것이 어김없는 진실이라고 호언장담한다. 더욱이 그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보통 사람도 아니고 군 장성 출신이다. 이 어마어마한 일에 대해 군 당국이 거짓말을 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군 장성 출신이 허언(虛言)을 한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워 좀 헷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고 북한은 이미 비무장지대 밑으로 땅굴을 뚫고 오다 발각된 전과가 있어 우리의 경각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자라를 보고 놀랐다면 솥뚜껑을 보고도 놀랄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군 당국이 확고히 부인하고 나섬으로써 안심은 되지만 불안하고 오싹한 기분이 아주 해소된 것은 아니다. 거짓말이든 참말이든 ‘말’이 갖는 위력이 그러하다.

1933년 미국의 대공황기에 취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라며 절망에 빠진 국민을 다독이면서도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공포 그 자체(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라고 했다. 루즈벨트가 말한 ‘공포 그 자체’라는 것은 실체는 모르면서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고(nameless)’ ‘이치에 맞지 않으며(unreasoning)’ ‘합당한 근거가 없는(unjustified)’, 그러한 막연한 공포를 이른다. 지피지기(知彼知己)의 군사지식이나 안보에 관한 전문 식견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로서는 군사 안보 문제가 엇갈리게 대두될 때 루즈벨트가 말한 그 같은 막연한 공포(fear itself)를 느끼게 된다. 국태민안(國泰民安)을 크게 흔드는 그것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군사 안보 문제에 관한한 무책임한 허언이 있어서는 안 되며 혹여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정부가 확실한 근거와 실체를 갖고서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어야 한다.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땅굴을 뚫는 것은 물고기가 물속을 거침없이 헤엄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북한 땅굴이 목포 거제도까지 뚫렸다면 그들은 마치 땅 속을 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이 거침없이 뚫고 왔다는 얘기밖에는 되지 않는다. 아무리 그들이 전 국토를 지하 요새화할 만큼 땅굴 뚫는 데 명수들이고 이골이 나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흔적도 없이 수백 킬로미터를 물고기 헤엄치듯이 술술 뚫고 올 수 있었을까?

땅 속은 물속과는 다르지 않은가. 그 긴 땅굴을 뚫었다면 그 작업 과정에서 생겼을 엄청난 양의 토사와 바위와 물은 어디로 실어 날랐는가. 불가능한 일이지만 굴착기나 곡괭이, 수레, 때로는 폭파 등에 의한 소음과 진동은 운이 좋아 숨길 수 있었다고 억지 가정을 하더라도 굴착에 따르는 부산물들은 결국 처음 굴착을 시작한 지점으로 실어 나를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그런 점에서 땅굴 작업은 땅을 뒤지면서 흙을 뒤로 실어 나를 필요가 없는 두더지의 땅 표층(表層) 뒤지기와도 다르다.

만약 북이 대전 목포 거제도까지 뚫고 왔고 서울과 전국에 걸쳐 수십 개의 지선을 굴착했다면 그로부터 나왔을 토사와 바위의 양은 고산준령을 이루고도 남았을 것이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지하수의 수량은 강의 수위를 크게 높여놓았을 것이 자명하다. 더구나 그 같은 방대한 작업이었다면 개미떼처럼 많은 인원이 동원돼 포착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부산하게 움직였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흔적마저 인공위성과 정찰기, 전자(電子)눈과 귀의 첨단기술 감시수단과 사람을 동원해 이루어지는 첩보 수집인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 등의 촘촘히 중첩된 예민한 첩보 수집망을 따돌릴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상식적인 의문마저 충족시키지 못하는 땅굴 소동이라면 공연히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괴담(怪談)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소리를 듣지 않으려거든 땅굴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은 대전 목포 거제도에서 땅굴을 찾아내어 그 소동에 헷갈려하는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괴이하게 남북 간에 전쟁이 터진다는 말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어떤 종교인이 퍼드렸다는 ‘12월 전쟁설’이다. 마침 북의 대남(對南) 핵 공갈, 대미(對美) 협박이 광기를 더해가는 마당이다. 이래서 그것이 상투적이며 허무맹랑한 것이라 해도 예사롭게만 볼 수 없는 때가 아닌가. 더구나 지금은 UN 제3위원회의 대북 인권 결의로 김정은의 심기가 극도로 불편하고 불안한 시기다. 이런 시기에 땅굴 소동에 전쟁설까지 겹치게 했으니 사람들이 설상가상으로 불안해하기에 딱 알맞은 상황을 조성해놓았다.

왜 하필 이런 때에 믿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저들의 광기로 보아 아주 무시하기엔 뭔가는 좀 찜찜한 그 같은 괴담을 퍼뜨리는가. 그 의도가 뭔가. 전쟁설을 퍼뜨린 장본인은 더구나 자신이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 한다던가 어쩐다던가. 말하자면 사람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는 하늘을 검증할 수 없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 팔아먹은 셈이다. 이는 교단 내에서도 비판이 일었듯이 항상 빗나간 말세론이나 종말론과 동류(同類)라 할 만하다. 그래서 혹세무민(惑世誣民)에 가깝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비와 한미 동맹이 저들의 섣부른 도발을 허용할 만큼 그렇게 허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변 어느 나라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도 그걸 안다. 심약(心弱)한 사람의 두뇌 작용에 의한 환상이 있지도 않은 유령도 만들어내고 도깨비도 만들어낸다는 것은 과학적인 정설이다. 그렇기에 심약한 환상보다는 차라리 과학을 믿는 것이 낫다.

북한은 국제 사회가 규탄하는 인권사각지대다. 그것은 그들 체제와 정권의 속성과 본질에서 비롯된다. 그것을 북미 대결이 원인이라고 말하는 단체들과 인사들도 있다던가. 그런가 하면 평양에 가서 그들의 무슨 국경절에 맞추어 출산을 하고 왔다는 누군가와 저들에 동조하는 재미교포 누군가는 마치 저들의 홍보대사라도 되는 것처럼 전국을 돌며 저들을 옹호하는 순회 토크쇼를 하고 다닌다던가. 도대체 왜들 그래? 몇 사람이나 그걸 믿겠나. 이런 궤변들을 늘어놓으면서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은가? 차라리 자신이 좋은 곳으로 떠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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