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밤 교통사고 피해를 입은 보물 제177호 사직단 대문 측면 모습(돋보기 모양). 사고 후 현재 대문 측면은 보수됐으며 인도와 도로가 연결된 길목에 볼라드(왼쪽 아래) 4개가 긴급 설치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사직단 대문, 교통사고로 훼손… 운전 부주의로 “큰일 날 뻔”
문화재청 “구조 안전 문제없어” 깨진 조각 최대한 활용해 보수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우리 주변에는 문화재가 많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심지어 집과 가까운 곳에서도 소중한 우리나라 문화재를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도시 개발과 도로 확장 등으로 많은 문화재가 매순간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도로와 인접한 보물 제177호 사직단 대문의 일부가 교통사고로 인해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1일 밤, 사직단 대문으로 승용차가 돌진해 대문 일부분이 파손됐다. 이날 오후 9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사직단 앞에서 독립문 방면으로 달리던 방모(19) 씨의 아반떼 승용차가 차선을 바꾸려다 주행 중이던 라비타 승용차를 들이받고 사직단 대문으로 돌진했다.

사고 차량은 인도와 근접한 사직단 대문을 보호하기 위해 쳐놓은 갈색 나무 울타리 인제책 3개를 들이받으면서 속도가 줄어 문과 기둥 사이에 멈춰 섰고, 다행히 대문의 기둥 하부와 심방목 등에 부딪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대문 기둥의 일부 파편이 떨어져 나가는 등 훼손됐다. 사고자는 면허를 취득한 지 1년 미만의 운전자로, 경찰은 운전미숙에 의한 사고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 보물 제177호 사직단 대문 앞에 볼라드(왼쪽 아래) 4개가 긴급히 설치된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기자가 사직단을 찾은 24일 오후, 문화재청은 사직단 대문의 파손된 인제책 수리 및 훼손 부위를 가릴 가림막을 설치해 놓았다. 인제책은 임시로 정비했으며, 사고 전에는 없던 볼라드도 급히 설치해 놓은 상태였다.

볼라드는 보도 및 차도 경계 부분의 차량 진입 방지를 위한 설치물로, 길말뚝이라고도 부른다. 사직단 대문 앞 사고 지점에는 네모반듯한 볼라드 2개와 둥근 형태의 볼라드 2개 등 총 4개의 석재 길말뚝이 설치됐다.

사직단 관리인은 “원래 볼라드는 없었다. 사고 후 2차 방지를 위해 임시로 급히 설치했다”며 “앞으로 훼손 부분에 대한 보수 후에 새롭게 길말뚝을 설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사직단 대문 전면 인제책 파손 모습(오른쪽 아래) (사진제공: 문화재청)

마침 길을 지나던 시민 김흥인(가명, 남) 씨는 “이 길을 자주 지나다녀서 사직단 대문 교통사고 뉴스를 접하고 놀랬다”며 “다행히 문화재가 많이 훼손되지 않아 걱정을 조금 덜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리 안전 설치물을 해 놓았으면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날 문화재청은 “사고 발생 후 긴급하게 관계전문가,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등 전문가들이 합동 현지조사를 시행했다”면서 “그 결과 사고 자동차가 사직단 대문 기둥 하부, 심방목 등에 부딪혔으나 다행히 대문의 구조 안전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사직단 대문 하부의 일부 훼손된 부분에 대한 보존처리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깨진 기존 목재 조각을 최대한 활용해 보수하게 할 예정이다. 또 사직단 대문, 인제책, 황철나무 주변 경계석 등 훼손 부분에 대해서는 교통사고 처리기관의 최종 결정에 따라 가해 차량과의 협의를 통해 보수할 계획이다.

▲ 사직단 대문 기둥이 훼손된 부분 (사진제공: 문화재청)

한편 사직단은 종묘(宗廟)와 함께 나라의 신과 곡식을 맡은 신에게 제사지내는 제단이다. 사직단 대문은 사직단과 관련된 여러 시설을 모두 포함하는 영역의 출입문으로, 동쪽에 있다. 1395년 사직단 창건 당시에는 제사 시설인 단과 제사 준비를 위한 각종 부속 건물, 사직단 관리 관청인 사직서 건물들이 하나의 영역을 이루고 있었다.

사직단 대문의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이후 중건해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붕 형식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에 책을 엎어 놓은 듯한 맞배지붕이다.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춰 댄 나무쪽인 공포는 17세기 익공 양식의 특징을 보여 우리나라 목조 건축 양식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사직단 대문은 1963년 보물 제177호로 지정됐다. 1962년 도시계획에 따라 당초보다 14m 물러난 것을, 도로 소통을 위해 1973년 다시 10m 뒤로 이정해 현 위치에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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