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중년이 되어 갈수록 남편은 점차 불안해지고, 자신감이 저하되며, 아내에게 의존적으로 되어 간다. 이는 사회적 능력과 지위, 경제적 능력, 신체기능 등이 점차 떨어지면서 동반되는 현상이다. 또한 성 호르몬과도 연관성이 있다. 남성호르몬의 감퇴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적절한 운동, 고른 영양, 휴식, 긴장의 완화, 정신적 충만감, 취미 활동 등을 통해서 호르몬의 영향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노화를 늦추기 위한 노력과 함께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 둘 다 필요하다.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40대 중반이 되면서 남편 A는 직장생활을 그만 두게 되었고, 아내 B는 종전의 프리랜서 직업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능력이 역전됐다. 남편은 구직활동을 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고 결국 집에 있게 되었다. 남편은 늘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했고, 급기야 잔소리도 많아졌다. 이에 아내는 남편을 한심한 사람으로 취급하기 시작했고, 이혼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큰 문제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남편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상실감과 불안을 아내에 대한 의존으로서 해결하려 했고, 아내는 그러한 남편을 힘이 빠지고 나약해진 사람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부부상담 치료과정을 통해서 해결이 되었는데, 상담과정의 핵심은 상대방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과 요구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함께 둘만의 여행을 갔다 오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결국 힘이 약해진 남편과 힘이 세진 아내를 서로 인정하여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으면서 역할의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필요했다.

중년 이후의 인간 정신 발달 과업은 주로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인가 또는 정체 상태에 빠지는 것인가의 문제다. 생산성이란 단지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것이나 돈을 버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성공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은 주로 경제적 및 사회적 활동에 주된 관심을 쏟았다가 비로소 자신의 내적인 감정에 보다 더 솔직하게 되고, 감정의 표현이 자유로워진다. 강하고 능력 있게 보이려는 강박관념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의존적 욕구가 생기는데, 그 대상은 대부분 아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부모와 자녀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변화된 사회적 지위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며, 성 생활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갈등이 생기게 되면, 자신감의 저하 및 불안과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어느 정도 있게 마련이다. 뒤늦게 사회적 성공을 거두거나 점차 원숙해지는 남자의 경우라면,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여전히 자존감과 파워를 유지하고 있다. 만일 젊은 시절부터 힘센 엄마와 힘없는 아빠 슬하에서 자란 아이라면,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성 역할에 대해서 일반적인 사회적 관념과는 다르게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아들은 힘센 엄마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향후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돈 벌어 주거나 집안일을 다 알아서 결정하는 아내의 역할을 기대하고, 의존적인 성향을 가질 수 있다. 혹은 여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매우 나약하고 가냘픈 심성의 여성을 아내로 선택할 것이다. 딸은 힘없는 아빠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향후 자신의 결혼생활에서 남편을 무시하거나 지배하려고 들 가능성이 있다. 혹은 그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매우 강하고 마초적인 성격의 남성을 남편으로 선택할 것이다.

혹시 지금 우리 남편이 힘이 빠지고 있는 것을 느끼는 아내라면 다음 사항들을 실천하도록 조언한다. 첫째, 남편에게 과거의 공헌과 성공에 대해서 잊어버리라고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언급하면서 고마움과 경이로움을 표현한다. 둘째, 남편이 즐거워하고 재미를 느낄 만한 활동을 권유하고, 관심을 자주 표현한다. 셋째, 역할의 변화가 있다손 치더라도 상징적으로 아내가 하는 활동을 고수한다(예: 와이셔츠 다리기, 밥상 차려주기 등). 넷째, 남편의 건강 상태나 변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챙겨준다. 아내들이여! 힘없는 남편의 기운을 북돋아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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