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출범한 서소문역사공원 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정부와 서울 중구청이 추진하는 ‘서소문밖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에 관해 특정종단 특혜의혹을 제기하며 사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범대위
교황방한 뒤 성역화 경계
타종교 역사 지우면 안 돼
아우르는 역사공원 바람직

중구청
1동 1명소 프로젝트 일환
특정종단만 위한 사업 아냐
종교적 성격 일부 가미한 것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서울 중구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서소문밖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이 특정종단 성역화 사업이라는 지적과 함께 심각한 역사왜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서소문역사공원은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에 시성된 103위 성인 가운데 44위가 순교한 곳이자, 2014년 8월 시복된 124위 가운데 27위가 순교한 곳이다. 이에 한국 천주교는 오래전부터 서소문공원의 단독 성지화 작업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선 시대 형장이었던 서소문은 사육신(성삼문 등)을 비롯한 홍경래, 전봉준 등이 처형된 장소이자,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김개남 장군의 수급이 효시된 곳이다.

조선시대의 사형장이자 한국근현대사의 수난과 아픔을 간직한 서소문공원 일대를 세계적 역사공원 및 순교성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대대적인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이 국유지인 서소문공원에서 사업이 가능토록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유지 관리 사무를 서울 중구청장에게 위임하고 사업비 50%를 국비로 보조할 예정이다. 서울시도 시비 30%를 지원, 각종 행정적 절차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지난 16일 출범한 ‘서소문역사공원 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는 “현 정부가 서소문공원을 천주교성지로 만들려하고 있다. 이는 심각한 역사 왜곡이다”며 “이번 사업에 막대한 국민의 혈세(520여억 원)가 들어갈 예정이다. 특정종단의 성역화 사업은 반드시 철회하고, 한국 역사의 자취를 체험할 수 있는 민족의 성지로 다시 거듭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범대위에 따르면 한국천주교에서 순교자로 인정받는 황사영은 조선을 청나라로 편입시키거나 아니면 프랑스가 군대를 보내 정벌해 달라고 요청한 이른바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서소문에서 처형됐다. 이에 대해 범대위는 “천주교에선 순교라고 강변할지 몰라도 국민 입장에서는 일본에 나라를 바친 친일매국노와 다를 바 없다”며 “특정종단만의 사업은 중단돼야 한다. 천주교, 천도교, 민족역사사적지 등 국민이 인정하고 함께할 수 있는 역사공원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천주교 성역화 사업의 추진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창익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HK연구교수는 불교평론이 지난 9월 개최한 ‘열린 논단’에서 한국 천주교가 전국 곳곳에서 추진하는 성역화 사업을 거론하면서 “이 땅에 새겨진 타종교의 흔적에 천주교의 순교사를 ‘덮어쓰기’한 전력을 갖고 있다”며 “우리는 교황의 방한 뒤에 감추어진 이러한 이율배반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그는 “‘나의 역사 만들기’가 ‘남의 역사 지우기’라는 것을, ‘나의 성지 만들기’가 ‘남의 성지 지우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서울 중구 서소문역사공원 전경.
◆서울 중구 “세금으로 특정종단 지원 못해”

서소문공원의 순교성지가 교황 방문의 계기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과 강복 기도 등으로 서소문 성지는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천주교 순례지’로 거듭나게 됐다. 이곳은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주재로 서소문의 천주교 순교자 44명이 시성(성인으로 추앙하는 것)되면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30년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고, 서소문의 천주교 순교자 27명이 시복(복자로 추앙하는 것)됐다. 현재 서소문 공원 현양탑에는 순교 성인 44명과 ‘하느님의 종’이라는 명칭으로 27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에 서울 중구는 적극적으로 성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구는 동마다 꼭 찾아야 하는 명소 1경을 만드는 ‘1동 1명소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서소문 순교성지를 기념하는 서소문 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이다.

서울 중구 도시관리국 도심재생과 김기헌 담당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문제를 제기한 분들이 서소문 사업에 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특정종단의 성지를 만들 수 없다”고 특혜 의혹을 일축했다. 이어 “조선 후기 개혁사상의 발현과 탄압이 한국근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주었기에, 그 사상을 일깨운 역사적 인물들을 추모하고 정신적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주교 순교성지와 연계된 부분에 대해선 “세계 천주교 신자가 12억 명에 달해 향후 1600만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서울의 경쟁력 향상이라는 목표 실현을 위해 이 사업에 종교적 성격을 가미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 호도해선 안돼… “역사왜곡 바로잡겠다”

▲ 서소문역사공원 바로세우기
범대위 정갑선 실행위원장
일부에서는 순교성지로서의 의미를 필요이상으로 강조할 경우 특정종교에 치우쳐 역사를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점차 커지고 있다.

서소문공원 범대위 정갑선 실행위원장은 “역사적인 사실을 (서로 논의하고) 조명해서 후손들에게 알려야 한다”며 “그런데 편향된 행정을 하거나 특정종단과 사업을 연계한다면 국민이 호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사업에 대한 문제점과 역사왜곡을 바로 잡는데 목소리를 알려갈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이기 때문에 어느 종단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뜻을 같이하는 역사학자와 단체 등과 연대하겠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정부와 국민이 바로 잡아 나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서소문공원은 분수대와 정자, 궁도장, 게이트볼장, 체력단련장 등이 있으며 시계탑과 기념비, 조각작품 등이 설치돼 있다. 본래는 서문 밖 순교지로 불리는 천주교 성지였다.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100여 명의 천주교인이 처형됐다. 이 중 44명이 성인이 돼 국내 최대의 천주교 성지로 자리를 잡았다. 공원의 명물은 천주교기념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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