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한때 ‘떡검’이란 말이 유행했다.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해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는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가 “현직 최고위급 검사 중에서도 삼성의 불법 뇌물을 정기적으로 받은 사람이 여러명 있다”고 밝힌 뒤 등장한 새로운 용어다. 위키 백과에는 ‘떡값을 받아먹은 검찰이라는 뜻의, 대한민국 검찰을 조소하는 표현’이라고 정의돼 있다.

명예를 먹고 산다는 검찰로서는 치욕스럽기 그지없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번에 ‘촌지검찰’이라는 모욕적 수사가 하나 더 붙게 됐다. ‘스폰서 총장’으로 몰려 천성관 검찰총장이 낙마함에 따라 운 좋게 검찰총장직에 오른 김준규 총장이 검찰을 담당하는 각 언론사 법조팀장(언론계에선 통칭 법조캡이라 부른다)과의 만찬회식자리에서 돈봉투를 돌린 게 일부기자들의 폭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해프닝은 검찰과 언론 모두 비난을 받아 마땅한 추악한 사건이다.

먼저 김준규 총장은 취임사에서 ‘떡검’이란 모욕적 세평을 의식한 듯 “떡값이라 불리는 명절 격려금을 없애고 수사비에 보태겠다”고 일갈했다. 이 말의 의미는 검찰 상층부가 부하직원에게 명절때 하사하는 ‘떡값 격려비’를 본래의 용도인 수사비로 사용하겠다는 뜻과 아울러 일반인들이 검찰에게 상납하는 떡값(실상 이는 명백한 뇌물이다)도 근절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스스로 이 원칙을 어겼다. 스폰서 검찰의 오명을 벗겠다며 노타이 차림으로 구내식당에서 식사한 것은 주위의 이목을 의식한 제스처였지 않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이 사건이 불거지자 김 총장이 “회식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돈봉투를 돌렸지만 촌지는 아니다”고 해명한 점이다. 도대체 기자 10명에게 1인당 50만원씩 돌린 게 촌지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의 촌지는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다. 한때는 교사들이 학부모로부터 받는 돈을 일컫기도 했다.  그런데 돈 50만원이 촌지가 아니라면 검찰총장의 안목에는 촌지의 하한선이 얼마쯤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한 100만원쯤 돼야 촌지라고 할 것인가?

기자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우선 그날 회식이 열린 장소부터가 문제다. 지난 3일 회식이 열린 곳은 회원제 고급 레스토랑인 서울 장충동 서울클럽이다. 김 총장은 임명 청문회때 7500만  원짜리 서울클럽 회원권을 소유한 것으로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김 총장은 바로 이 서울클럽이 호화스런 곳이 아니란 것을 보여줄 요량으로 회식장소로 정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웬만한 호텔보다 더 폐쇄적인 상류사교클럽임을 잘 알고 있을 기자들이 서울클럽을 회식장소로 선뜻 수용한 점은 이해할 수 없다.

필자가 현역기자시절엔 기관장의 회식은 으레 그냥 ‘밥집’이나 ‘고깃집’에서 열렸다. 만약 이번 일이 요즘 기자들이 그런 호화 레스토랑에 익숙해진 걸 반영하는 사례라면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또한 돈봉투가 건네진 회식자리에서 곧바로 봉투를 반납하지 않은 점도 가슴 아프다. 기자들은 봉투를 받아 돌아갔다가 돈이 워낙 거액인 점과 일부 언론사가 이를 되돌려주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틀이나 지난 뒤 이를 돌려주고 기사화했다. 그나마도 한겨레, 경향 등 소수 언론만이 보도했다.

또한 그날 행사는 법조팀장들만이 모인 ‘거룩한 자리’였는데 이를 보도한 모 언론사의 경우 팀장이 유고여서 차석기자가 참석했는데 바로 이 기자가 회사 측에 사실보고를 하는 바람에 사건화 됐다는 설도 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팀장들만이 참석한 행사였다면 자칫 암묵적 동조로 이번 일이 묻혔을 뻔 했던 것이다.

게다가 법조기자들의 친목모임인 ‘법조언론인클럽’이 이 점에 대해 한마디 논평을 내지 않은 사실도 지적하고 싶다. 이 모임이 진정한 언론인들의 모임이라면 마땅히 자성의 성명을 냈어야 한다. 기자, 특히 가장 민감한 정치, 경제적 사안을 다루는 검찰을 담당하는 법조기자들의 맹성과 분투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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