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과 역사가 맞닿은 그곳 ‘백령도’①]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 기사에 이어서

▲ 백령면 두무진 ⓒ천지일보(뉴스천지)
◆장산곶과 백령도, 그 사이에 인당수가 있다

효녀 심청이 앞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供養米) 삼백 석에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印塘水). 백령도와 북한 황해도 장산곶 사이의 바다를 인당수로 보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이는 백령도에 효녀 심청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 ‘심청각’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령도와 대청도 중간에 있는 연봉바위는 용궁에 내려갔다 온 심청이가 연꽃에 싸여 물 위로 떠올랐던 곳이라고 한다. 소설이든 혹은 오래 전의 실화가 시간이 흐르면서 설화처럼 굳어진 것이든, 심청각에서 바라보는 인당수는 유난히 더 깊고 차가워 보인다.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친 효녀 심청. 사실 조금만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 심청의 이야기는 ‘효(孝)’라는 메시지 외에도 어른들의 위선과 욕심, 종교인의 사기행각(스님), 뱃사람들의 인신공희 등 참으로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얽히고설켜 결국 한 소녀를 죽음으로 내민 슬픈 이야기가 함께 서려있다.

또한 심청이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면,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진 행위가 단지 아버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심청의 희생은 당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불법을 당연한 듯 행했던 어른들과 그런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희생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인당수인가. 사람이 희생의 제물로 바쳐지는 곳이라면 응당 ‘사람 인(人)’자를 떠올리기 쉬운데, 심청이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몸을 던진 곳은 ‘도장 인(印)’을 쓴 인당수(印塘水)다. 이는 초자연적인 무엇 혹은 누군가와의 무언의 약속을 상징한다고 해석 할 수 있다. 공양미 삼백 석에 눈을 뜨게 된다는 스님의 약속은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거짓이었지만, 그 약속을 철썩 같이 믿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믿음이 결국 아버지의 눈을 뜨게 만든다는 복선은 아니었을까.

▲ 심청각(진촌리) ⓒ천지일보(뉴스천지)
◆만고 효녀 심청, 만고 효자 예수를 만나다

“어이 하나. 어이 하나. 이 일을 어이 하나. 불쌍한 심청이는 인당수에 빠지고. 푸른 물 인당수는 물결만 출렁이네… 불쌍한 심청이는 인당수에 빠지고. 공양미 삼백 석에 제물이 되었다네.”

조은아 작시, 이수인 작곡의 합창곡 ‘인당수’의 일부다. 소경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과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먹먹한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무리 아버지를 위한 희생이라고는 하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깊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소설에 따르면, 심청이 배에서 뛰어 내리기 전 선창(船艙)에 서서 두 손 모아 신령님께 우러러 빌 때 산천도 울었고 초목도 울었다고 한다. 이 심청은 인당수 깊은 물에 빠졌다가 3일 만에 부활해 왕비가 됐으며, 그 효심이 결국 아버지의 눈을 뜨게했다.

이는 마치 초림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생각나게 한다. 2000년 전 초림 예수 또한 하나님의 말씀도 그 약속도 알지 못하는 밤 같은 세상에서 소경들의 눈을 뜨게 하고자 은전(銀錢) 30냥에 팔려 십자가상에서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기도했다. 예수는 장사한 지 3일 만에 부활해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우편에 앉았으며, 다시 올 것을 약속했다.

▲ 심청각(진촌리) ⓒ천지일보(뉴스천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장 39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또한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사명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자, 인류를 죄에서 해방하기 위한 길이었기에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혹 죽음일지라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 이 또한 효(孝)였다. 그렇게 백령도에서 만난 효녀 심청은, 2000년 전 초림 예수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만고 효자 예수와 만고 효녀 심청이 이곳 백령도에서 조우(遭遇)한 것이다.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불릴 정도로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섬 백령도. 운명의 장난처럼, 아니 운명처럼 우리의 품으로 들어온 서해의 외딴 섬. 어쩌면 더욱 외로운 섬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그곳. 오랜 역사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은 섬두무진의 일몰 백령도. 그곳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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