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뉴스천지)
국민 71% 공동주택 거주
입주민 88% 소음 겪어
‘말싸움’이 가장 심해

소음측정법·벌금규정 등
구체적 로드맵 마련해야
건축기술향상도 필요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 강심장(가명, 40, 여) 씨는 매일 쪽잠을 자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건의 시작은 11개월 전부터였다. 2층인 강 씨의 앞집에 공부방이 들어왔다. 주5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6시간 동안 초등학생 수십 명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발소리, 문소리, 뛰는 소리, 장난치는 소리가 커져만 갔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앞집 벨을 눌렀다. 그리고 “TV소리에 묻힐 정도만이라도 아이들을 지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주인으로부터 되돌아오는 건 “아이들 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있냐, 그게 들릴 리가 있냐” 등의 말이었다. 사과는커녕 강 씨가 너무 예민하다고 몰아세웠다고 한다. 참아보려고 했지만 점점 더 소리가 심해졌다.

법적인 해결책을 찾아봤지만, 이렇다 할 방법은 없었다. 억울한 마음에 동사무소와 경찰서를 찾았지만 누구 한 사람도 강 씨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강 씨는 “이제 너무 괴로워서 내 집에서 쫓겨나 외출할 일이 없어도 밖을 배회하다가 저녁 7시 넘어 들어오는 어처구니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주택 내에서의 층간 소음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층간소음 관련 기준을 마련했지만, 이 또한 제대로 된 대책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공부방으로 인한 층간소음 문제는 법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져만 가고 있다.

◆사교육만 보호하는 정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초·중·고 대상 전체 사교육비 규모는 18조 6000억 원으로 조사됐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3만 9000원으로 전년(23만 6000원) 대비 3000원 증가했다. 이와 관련, 최근에는 학원과 과외의 장점을 합친 홈스쿨 공부방이 교육업계에서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과외보다 저렴하게 전 과목을 배울 수 있으며,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먼 거리의 학원보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부방은 사업자 신고 후 관할교육청에 신고하면 쉽게 운영할 수 있다. 문제는 아파트 내에서도 공부방이 허용돼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국민의 약 71%는 공동주택에 살고 있으며, 전체 아파트 입주민의 88%가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응답자의 79%가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고 9%는 ‘(층간소음에 대한) 잦은 항의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층간소음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54%는 층간소음으로 이웃과 다툰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말싸움(44%)이 가장 많았고, 보복(7%), 몸싸움(3%) 등의 순이었다.

여기에 대해 강 씨는 “아파트 건물이 아닌 상가에서 공부방이 운영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야 하며, 국민에게 기초질서를 의무적으로 교육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층간소음 제도적 보완 시급

앞서 정부는 지난 6월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을 마련해 본격적인 규제에 나섰지만 오히려 층간소음 관련 규제를 후퇴시켰다는 지적이 높다.

입법예고된 층간소음 기준(1분 등가소음도 주간 40dB, 야간 35dB)이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올해 2월부터 분쟁 조정에 적용하고 있는 기준치(주간 40dB, 야간 35dB)보다 3dB씩 완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층간소음 피해 상당수가 법적 보호망 밖으로 밀려났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음관련 측정 방법’과 ‘벌금 규정’이 명확히 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환 한국소음진동기술사회 층간소음위원장은 “현재 층간소음을 정확히 재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다. 어떻게 재느냐, 누가 재느냐에 따라다 다르다”며 “정부는 층간소음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진수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경우 층간소음 기준을 초과하면 벌금을 내도록 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처벌기준이 미미한 게 문제”라며 “모든 사람이 층간소음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공동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정부와 지자체 등은 건축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