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산동유적 출토 동경(조선시대). (사진제공: 국립김해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테마전시서 공개
구산동·죽곡리서 2600기 무덤 확인
도자기·청동제품·장신구 등 발견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김해 지역은 가야연맹체 중 금관가야의 터전이었던 곳이다. 가야를 형성했던 중심지였기 때문에 가야와 관련된 유물이 많이 발견됐다. 하지만 최근 김해에서 고려와 조선시대 무덤 유적이 발견돼 그 시기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영남 지역에서의 고려와 조선시대 유적에 대한 연구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2006년~2008년 김해 구산동과 죽곡리유적에서는 약 2600여 기의 고려와 조선시대 무덤과 다량의 출토품이 확인됐다.

국립김해박물관이 최근 김해의 고려-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다양한 문화유산을 공개하는 테마전 ‘김해, 가야를 벗 고 고려-조선을 입다’는 11일부터 2015년 3월 1일까지 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에서 열린다.

국립김해박물관은 “이번 전시는 ‘김해 하면 가야’라는 일반적인 상징성에서 벗어나 가야 이후의 고려와 조선에 대한 시간을 되짚어보고, 이것을 공개함으로써 역사의 다양성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마련했다”고 밝혔다.

최근 김해에서 조사된 고려와 조선시대 무덤 유적은 대략 20여 개에 달한다. 대부분 나무관을 이용한 널무덤(木棺墓)과 구덩이에 그냥 묻은 직장묘(直葬墓)다. 또한 고려시대 무덤에서는 ‘요갱’, 조선시대 무덤에서는 ‘편방(便房)’이라는 작은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유품을 넣은 풍습 이 확인됐다.

이들 무덤 안에서는 주로 토기, 청자·분청사기·백자 등의 도자기와 동전, 그릇, 숟가락과 젓가락, 거울 같은 청동제품, 구슬과 동곳류의 장신구가 발견됐다.

박물관은 “김해 구산동과 죽곡리유적은 고려 중기부터 임진왜란 이후인 18세기까지 사용된 다양한 종류의 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이중 ‘金海⋅長興庫⋅果方’라는 글자가 새겨진 분청사기는 김해 분청사기 제작에 대한 지역명칭과 사용처, 공급과 관리 장소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가야는 낙동강 하류의 변한 지역에서 일어난 나라로, 초기에는 김해의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연맹체를 형성했다. 낙동강 유역을 비롯한 경남 해안 지대에는 서기전 1세기 초부 터 한반도 서북부의 세형동검 관련 청동기 및 철기 문화와 토기문화가 유이민과 함께 들어왔다.

서기 후 2세기 중엽에는 그중에서 성장 속도가 빠른 김해 등지를 중심으로 사회 통합이 진전돼 김해 가야국 등 단위 소국이 출현 했으며, 수로왕(首露王) 신화는 김해 지방 소국의 성립을 표방하는 정치 이념이었다.

이들은 2∼3세기에 걸쳐 김해의 가야국을 중심으로 12개 소국이 합친 변한 소국연맹 즉 전기 가야연맹체를 이뤘다. 그리고 발달한 철기생산 능력과 양호한 해운 입지 조건을 바탕으로 주변 지역과 교역하며 발전해나갔다.

그중에서도 김해 가야국과 함안 안라국이 우월했는데, 특히 해운 입지 조건이 좋은 김해 의 가야국은 ‘낙랑’과 ‘왜’ 사이의 원거리 교역 중계 기지로서 큰 세력을 떨쳤다.

그러나 가야는 5세기경 고구려와 신라의 압력으로 큰 타격을 받고 세력이 약해졌다. 5세기 이후 고령 지방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연맹의 세력권이 재편됐으나 끝내 중앙 집권 국가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6세기 중반 신라에 통합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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