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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 9시 등교제
학부모·학생 찬반 논란
혼자 밥 먹고 TV 시청
자녀 취침은 2시간 늦게
저학년은 게임 중독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학생들의 잠잘 권리와 건강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로 진행된 9시 등교제가 시행된 지 두 달이 넘어섰다. 이 정책을 놓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찬반 논란이 이어졌지만 서울을 포함해 전북, 제주, 광주 등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입 취지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지만 새로운 정책을 시행한 뒤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식은 효율성이 낮다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실제로 9시 등교 제도가 시행 중인 경기도 김포시의 학부모를 통해 실생활을 들어봤다.

◆온 가족 식사는 ‘하늘에 별 따기’

“9시 등교제가 시행됐지만 하루 중 밥을 같이 먹을 시간은 전에나 지금이나 없긴 마찬가지예요. 교육청에서 강조하는 밥상머리 교육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현재 맞벌이를 하는 김정옥(가명, 50, 여) 씨는 작은 도서관에서 2교대(오전 8시~오후 4시, 오후 2시 30분~오후 8시 30분)로 근무 중이다. 남편 손병득(가명, 50) 씨는 오전 6시에 출근해서 오후 7시에나 집에 들어와 개인 업무를 보거나 집에서 쉰다.

김 씨와 손 씨 사이에는 고등학교 1학년인 손은지 양과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손수지 양이 있다. 큰딸 은지 양은 지난 9월 1일부터 시행된 9시 등교제로 오전 9시에 등교해 10분 뒤에 수업을 시작한다. 오후 4시에 정규수업을 마친 손 양이 5시 30분까지 보충수업 후 저녁을 먹고 야간자율학습을 한 뒤 집에 오는 시간은 오후 9~10시.

작은딸 수지 양은 오전 9시에 등교해 오후 4시면 하교한다. 수지 양은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책을 보거나, TV를 시청하고 혼자 밥을 차려 먹는다. 일정이 이렇다 보니 가족 모두가 모여 앉아 밥을 먹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김 씨는 “맞벌이 부부는 이전이랑 달라진 게 없다. 늦게 일어난다고 밥 먹는 것 아니다”며 “오히려 늦게 잘 핑계가 생겨 작은 아이의 취침 시간이 오후 10시에서 12시로 바뀌었다. 그 시간에 아이가 공부를 하겠느냐?”라고 되물었다.

이어 김 씨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선 초저녁은 ‘엄마 재우는 시간’이라고 한다”며 “자는 척하다가 엄마가 잘 때 이불 뒤집어쓰고 스마트폰을 하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씨에 따르면 요즘 학부모들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스마트폰 게임이 무섭다고 말한다. 자제력이 없는 저학년은 스마트폰을 통해 게임과 야한 동영상 등을 쉽게 접하고, 중독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늦춰진 등교시간은 이러한 아이들의 마음에 불을 붙인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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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암리에 새벽반 다니는 학생 늘어

학원비에 대한 부담감도 더욱 커졌다. 기존에 아이들은 일찍 등교해 선생님들의 관리 하에 활동했으나 그 시간이 비어 버리니 암암리에 잠깐이라도 학원(새벽반)을 보내자는 학부모가 느는 추세다. 김 씨는 “‘학원에서는 5명만 모여도 얼마든지 수업할 수 있으니 큰 딸을 학원에 보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며 “남편 사업이 망해 월세 사는 상황이라 보내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한탄했다.

게다가 이 지역에선 정규 수업을 마친 후 학원을 보내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김 씨는 설명했다. 애매한 시간 야간자율학습을 시키는 것보다 학원에 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정 형편상 학원에 보내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마음이 찢어진다.

“현재 제도가 변화돼야 하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어떤 정책이든 유해기간이 필요합니다. 부모와 아이 모두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해요. 예고 없이 시행되는 게 제일 큰 문제죠. 성급하게 밀어붙이고 문제가 생기면 보완하자는 것은 국민의 정서를 우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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