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포커스] “내 몸에 딱 맞는 맞춤양복… 손님 만족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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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양복점 이경주 대표 ⓒ천지일보(뉴스천지)

종로양복점 이경주 대표
3대째 운영… 2016년엔 100주년
저마다 다른 체형에 100% 맞게 제작

[천지일보=김민아 기자] ‘since 1916 종로양복점’이라는 글자가 붙은 작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나란히 걸린 양복 그리고 3대째 양복점을 이어온 이경주(65) 대표가 인자한 미소를 띠며 손님을 맞이했다.

찬장 안에 오래된 다리미가 눈에 들어왔다. 불에 달군 숯을 넣어 사용했다는 검은 쇳덩이는 양복점이 지나온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맞춤양복점인 ‘종로양복점’은 할아버지 이두용(1882~1942) 씨와 아버지 이해주(1914~1996) 씨에 이어 지금은 3대째인 이 대표가 맡아 운영하고 있다.

“2016년이면 100년인데 아깝잖아요. 2~3년 전에 경기가 아주 안 좋아서 그만둘까 고민했지만 이게 없어지면 보람도 없고, 100년은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랬더니 요즘 들어 손님들이 꾸준히 이 조그만 가게를 찾아오더라구요.”

종로양복점은 이 대표의 할아버지 이두용 씨가 1916년 종로1가 보신각 옆자리에 문을 열면서 그 역사를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였던 그때 당시엔 양복에 대한 인식이 미미해 주로 학생복을 제작했다. 그러자 조선 학생들이 모두 종로양복점으로 몰려들었다. 애국심이 가게를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0년대 중반에는 직원이 200명 가까이 늘고 함흥과 개성에도 지점을 냈다. 1942년에는 가게를 처음 자리에서 종로 1가 2층짜리 건물로 옮겼다.

“할아버지의 권유에 아버지는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양복 일을 배웠어요.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양복점을 물려주려고 점을 찍어둔 것 같아요. 좋은 직업 같으면 장남에게 물려줬겠지만, 옛날에 양복쟁이가 좋은 직업인가요. 그래도 그때 당시 김두한 씨 등 정치인들이 수도 없이 많이 왔죠. 할아버지 땐 이시영 부통령도 우리 가게에 왔어요.”

종로양복점 2대 대표인 이해주 씨는 여덟 형제 중 넷째 아들이다. 당시 은행을 다니던 이 씨에게 1대 대표 이두용 씨는 양복점을 물려받을 것을 권유했다. 1970~1980년대 초에는 하루에 양복을 10벌 이상 만들 정도로 가게가 번창했다. 맞추는 사람, 가봉하는 사람, 찾아가는 사람 등 하루에 30명 이상 가게를 들락날락했다. 맞춤양복이 성행하던 그땐 종로 1가에 종로양복점뿐 아니라 다른 양복점도 수십 개가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대기업에서 기성복이 나오기 시작했고 젊은 사람들은 기성복으로 옮겨갔다. 양복점은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종로양복점을 포함해 한두 개의 양복점만이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손님에게 항상 친절하게 대하고 손님 시간은 절대 뺏으면 안 된다는 것이 아버지의 가르침이었어요. ‘정성무식(精誠無息)’ 손님을 대하는 정성은 끝이 없다고 강조하셨죠. 항상 정장에 구두까지 신고 손님을 맞이해야 했죠. 심지어 가게를 지키느라 누이동생 결혼식도 못 갔어요.”

▲ 3대째 종로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경주 대표가 자신의 가게에서 양복을 재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3대째 가게를 이어받은 이 대표는 1969년부터 양복 재단을 배우기 시작했다. 청계 5가에 있는 복장학원에서 자 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아버지 이해주 씨에게 혹독하게 양복 일을 배웠다. 손님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밥을 먹다가도 손님이 오면 숟가락을 놓고 달려 나갔다. 사람이 얼굴이 다 다르듯 몸도 다 달라서 양복 만드는 것을 배우는 일도 매우 힘들었다고 이 대표는 회상했다.

“양복을 못 만들면 손님이 오겠어요? 내가 자랑이 아니라 50년 가까이했으니 특별한 노하우라면 바로 경험이죠. 우리 가게엔 정통으로 입으려는 분들이 많이 와요. 정통식으로 만든 양복은 유행도 타지 않고 오랫동안 입어도 흉하거나 옛날 옷 같지 않죠.”

종로양복점은 광화문을 거쳐 지금은 중구 저동의 한 빌딩 6층에 자리를 잡았다. 맞춤양복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대로변에서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긴 했지만 여전히 이 대표의 양복을 찾는 단골들이 있어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 특별한 날 입을 예복을 맞추러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지만 특이한 체형 탓에 기성복이 맞지 않는 손님들도 많이 찾아온다. 한번은 허리가 47인치인 손님이 찾아왔는데 옷감도 두 배로 들고 맞추기도 힘들었지만 완성된 양복을 입고 기뻐하는 것을 보니 자신이 배로 더 기뻤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손님이 만족하는 것이 제일이에요. 만들어주는 사람이 입는 것도 아닌데 내 멋대로 할 순 없죠.”

이 대표는 한 벌의 옷을 만들기 위해 20여 군데 치수를 잰다. 기성복과 맞춤옷의 가장 큰 차이라면 입는 사람의 체형에 100% 맞는다는 것이다. 기성복은 체형이 비슷하면 다 맞지만 맞춤옷은 다른 사람이 입으면 전혀 맞지 않는다. 또한 손님의 개성대로 다 맞춰서 해주기 때문에 만족도가 크다.

“내 인생엔 양복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오로지 양복만 생각해요.”

이 대표는 가게를 이을 후계자가 없는 탓에 운동도 병행하며 열심히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다. 과거 의상을 부전공한 둘째 딸이 가게를 물려받겠다고 했으나 남자를 상대하는 일이라 반대했던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 이 대표다. 그러나 민속박물관에서 종로양복점에 관한 책을 집필해 주는 등 여러 사람들의 관심이 힘이 된다고 말한다. 언젠간 자녀들의 마음이 변해 이 가게를 맡아주는 것이 이 대표의 가장 큰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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