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데에 비해 생산 효율이 매우 낮은 국가기관을 들라고 한다면 우리 국민은 주저하지 않고 국회를 지목할 것이다. 국회를 두고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비용·저효율’의 대명사로 낙인찍고 있는바 국회 상임위원회 중에서도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단연 으뜸이다. 19대 총선을 불과 50일 남겨놓고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아 선거업무를 관장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겪은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직선거법에서 선거 1년 전까지 선거구가 확정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국회는 법정기구인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의 구성을 제때 해본 적이 없다. 늘 지각해 구성된 획정위가 당리당략에 따라 이리 깁고 저리 고친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해도 그 안을 토대로 심의하는 국회 정개특위에서는 여야 위원들의 입장이 다르다 보니 사회 여론이 담긴 원만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시간끌기와 제 밥그릇 찾는 데에 급급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지난 19대 총선 선거구 조정에서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기’ 식으로 결정했다. 인구 증가에 따라 경기도 파주와 강원도 원주, 세종시 지역구 등 3곳 증설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개특위 여야의원들은 줄여야 하는 지역구를 놓고 한 치 양보 없는 샅바싸움을 계속하다 보니 선거일정 차질을 우려한 중앙선관위가 19대에 한해 의석 한 석이 증원된 300석을 건의했고, 마침내 국회의원 300인 시대가 열렸던 것인데 그처럼 정개특위는 ‘고비용·저효율’의 표본을 보였다.

그런 정개특위의 과거 활동 내력이 국민의 마음속에 여전히 불신으로 남아있는 판에 지난 30일, 헌법재판소는 고모 씨가 제기한 국회의원 선거구 관련 헌법 소원에서 ‘선거구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헌재가 선거구 인구 편차를 내년 말까지 2대 1 이하로 낮추라고 권고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16년 4월 13일 실시될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 지역구 인구가 최소 13만 9000명 이상이어야 하고 최대 27만 8000명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예삿일이 아니다.

헌법재판소 권고안 기준대로 한다면,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가운데 인구 상한선을 넘는 전국 37개 지역은 분구돼야 한다. 또 인구 하한선에 미달되는 25개 곳은 통·폐합이 불가피해 인근 선거구까지 조정이 필요한 바, 다음 총선이 1년 5개월 남짓 남아있지만 닥쳐 올 폭풍 조짐에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고 내년 초부터는 선거구 획정이 국회 내에서 다뤄져야 하는데 현직이나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는 후보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인 것이다.

이 문제를 풀어감에 있어 적정 인구가 잘 배분된 지역구가 되도록 선거구 통폐합 또는 증설을 통해 정리하
는 방법이 있겠지만 선거제도의 전면 개편이 부상될 수도 있다. 가뜩이나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소선구제가 안고 있는 각종 문제들, 특히 승자 독식 구조와 지역주의를 고착화시키는 현실 등을 감안해 볼 때 헌재의 ‘선거구 헌법 불합치’ 판정은 예상외로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고, 정치개혁의 신호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처럼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에 따른 문제는 조정 과정에서 정개특위가 입맛대로 부실하게 처리될 경우다. 선거구 획정이야말로 의원 개개인의 ‘밥그릇’이 달린 문제요 ‘정치적 생명줄’로 연결되다보니 정개특위에서도 팔이 안으로 굽혀지게 마련일 것이다. 벌써부터 의원들 사이에서는 54석인 비례대표를 줄이고 지역구를 증설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들은 정치개혁에 반하는 내용을 스스럼없이 내뱉고 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헌법 불합치’ 판정에서 파생된 국회의원 선거구 재획정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계제(階梯)를 마련해주었다. 따라서 현재 국회에 속한 선거구획정위원회 제도를 혁신적으로 개선해 선거구 획정 과정에 정치권의 관여나 영향력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정서에도 맞을 터인데, 방법 중 하나가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권한을 중앙선관위에 넘기는 일이다.

그렇게 될 경우 위헌 문제가 불거질 소지도 있겠지만 공청회 개최 등 국민 의견이 충분히 담겨진 선관위의 선거구 획정 안을 국회가 존중해준다면 그리 문제될 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에도 여야의원으로부터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을 중앙선관위에서 하자’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 총 4건 계류돼 있는 상태다. 정치개혁의 씨앗이 될 수 있는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논의를 ‘고비용·저효율’의 대명사로 이미 낙인찍힌 국회 정개특위가 계속 맡아 한다는 것은 ‘고양이에 생선을 맡기는 격’으로 문제가 따르니 이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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