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스포츠팬들이 경기만 보고 마냥 즐거워하던 때가 있었다. 경기장에서 선수만 볼 수 있으면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특정팀에 대한 팬들의 관심과 애정이 뜨거워져 감독, 선수가 한가족같이 강력한 커넥션을 이루었다. 충성심이 대단한 팬들은 경기 승패를 넘어서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모든 팀 문제에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할 정도이다.

세계적인 마케팅 석학 필립 코틀러 미국 노스웨스턴 석좌교수는 지난 2009년 출간된 명저 ‘스포츠팬을 잡아라’에서 전 세계 다양한 종목의 선수, 팀, 리그, 시설 등의 치밀한 운영 상황과 사례를 통해 스포츠팬의 달라진 양상을 탐색하면서 스포츠팬의 효율적인 관리가 스포츠 비즈니스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25일 프로야구 한화 김성근 감독과 KIA 선동열 감독의 임명과 퇴진을 지켜보면서 날로 변해가는 팬심의 ‘무서운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팬들의 결정에 따라 감독 문제가 판가름 났기 때문이다.

한화 구단은 최근 6년간 최하위를 다섯 차례나 할 정도로 극심한 부진을 보인 팀을 개편하기 위해 김응룡 감독을 퇴진시킨 뒤 후임 감독을 내부 승격으로 가닥을 잡고 후보군을 올렸다. 당초 한용덕 단장 특별보좌역, 이정훈 2군 감독 등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장고 끝에 김승연 구단주는 김성근 감독의 영입을 원하는 팬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팬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김성근 감독의 풍부한 지도자 경험을 높이 산 것이다. 프로야구판에 팬들의 영향력을 확인케 해주는 대목이다.

KIA 선동열 감독은 팬들의 성화에 몰려 재계약 6일 만에 사임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선동열 감독은 지난 19일 구단 측과 재계약을 했지만 팬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선동열 감독은 계약 3일 뒤 구단 홈페이지에 ‘팬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올려 앞으로의 팀 운영 방안 등을 밝혔다. 지난 3년간 성적 부진에 시달렸던 팀이 내년에도 부진하면 사퇴도 불사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팬들은 ‘불량 게시물’에 적용하는 ‘신고하기’ 버튼을 많이 눌러 이 글이 자동으로 삭제되게 했다. 이후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선동열 감독과 지난 9월 KIA 내야수 안치홍과의 면담 내용이 알려지면서 더욱 입지가 안좋아졌다.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 탈락 후 경찰청 야구단 지원 의사를 밝혔던 안치홍을 설득시켜 달라는 구단의 부탁을 받은 선동열 감독이 “프로는 소모품이지만 최악의 경우 구단에서 임의탈퇴까지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선동열 감독의 가족에게까지 뻗친 팬들의 집요한 성토에 못이긴 나머지 결국 사퇴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과 선동열 감독의 진퇴 상황을 보면서 프로야구판에 팬들의 영향력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전 구단 최고위층의 선호와 독단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지던 감독 인선 상황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개인 스트레스 해소와 즐거움을 위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경기를 즐겼던 예전의 소극적인 팬들에서 특별한 애정과 소속감을 느끼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적극적인 팬들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이제는 구단측도 구단의 전반적인 운영문제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팬들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한 소통과 공유가 원활한 미디어 융합 시대에 팬들은 다양한 말과 글, 행동 등을 통해 쌍방향적이며 적극적인 활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점차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인 ‘스포테인먼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프로야구와 같은 프로스포츠는 구단과 일체감을 가지려 하는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는 프로구단이 특정한 기업의 자산을 넘어서 팬들과 공감하고 공유하는 사회적 자산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점차 자리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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