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연속 정상생활 못하면 우울증 진단
뇌의 신경전달물질 부조화로 인해 발병
‘낫지 않는다’는 편견 버리고 적극 치료
[천지일보=김민지 기자] 왠지 모르게 의욕도 없고 마음이 무겁고 슬퍼질 때가 있다. 우리 마음에도 가을이 찾아온 걸까?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남녀 직장인 3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89%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아니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11%에 그쳤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이 ‘가을 우울증’을 겪고 있는 셈이다.
고려대 의과대학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1991년 우울증 연구를 시작해 현재 우울증 분야에서는 일인자로 꼽히고 있다. 이 교수에게서 들은 우울증 이야기는 ‘긍정 바이러스’로 작용해 기자의 우울감을 단번에 해결해 줬다.
―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우선 정신작용약물유전체센터 소장과 우울증임상연구센터 ‘한국인 우울증 표준치료지침개발’ 책임자를 겸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보면 과천정신보건센터에서 일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환태평양 정신의학회 회장과 WPA(국제정신의학회) Zonal 17(동아시아 지역) 대표(Representative)를 맡고 있다.
― 우울증의 경계가 모호해 보인다. 우울증으로 진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
인생을 살다보면 슬프기도 하고 괜스레 눈물이 나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기분을 가리켜 ‘우울감’이라고 한다. 이 우울감이 지나치면 우리의 신체 또는 마음에 크게 영향을 주게 되고, 이로 인해 2주 연속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게 되면 이때 우울증으로 진단한다. 기자라면 2주 동안 기사를 못 쓴다거나 학생은 2주 동안 공부를 못한다. ‘2주 연속’이라는 아주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다.
― 우울증의 의학적 근거와 발병 원인은.
우울증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감소함으로써 발병하기 때문에 ‘마음의 병’이 아닌 생화학적 뇌질환으로 봐야 한다. 신경전달물질은 음식으로 따지면 조미료에 해당한다. 이 신경전달물질의 부조화로 인해 ‘맛없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고, 이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거나 팔‧다리에 통증이 오는 등 신체적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발병 원인으로 이와 같이 신경전달물질의 부조화가 있을 수 있고, 두 번째로 유전적 요인이 있다. 부모가 우울증에 걸렸을 때 자녀들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보다 3배쯤 높다. 신체적 질환이나 약물‧외상으로 인한 우울증도 있을 수 있다. 심리적으로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분노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거나 피아니스트가 손을 못 쓰게 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이외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도 굉장히 많다.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우울증 발병률이 2배가량 높다. 호르몬이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여자는 한 달에 한 번씩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가 오기 때문에 우울증의 위험도가 높아진다. 한 달에 한 번씩 30년으로 잡으면 약 360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또 요즘같이 날씨가 추워지면 우울해질 수 있다. 사람의 몸에는 멜라토닌이 적당량 있어야 하는데, 춥다는 이유로 내부에만 있으면 햇빛을 쬐지 못해 멜라토닌이 많아지게 된다. 그럼 낮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몸은 밤으로 인식해서 자꾸 눕고 싶고 무기력해진다.
―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했는데.
우울증은 감기와 같이 흔하게 발병하고 재발이 잘 된다는 특징이 있다. 감기에 걸리면 대여섯 명에게 전파되는 것처럼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가령 가정주부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가족구성원을 챙겨주지 못하니까 다 같이 우울해질 수 있다.
또 감기는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져서 걸리지만, 우울증은 신경전달물질의 부조화로 발병한다. 정확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내가 마음이 약해서 우울증에 걸렸다’는 죄책감에 빠져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창피해할 이유가 없다.
― 우울증이 위험한 이유는.
우울 증상이 심해지면 모든 상황을 피하고 싶어진다. 영원히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 선택하는 것이 자살이다. 정상적인 사람에게 있어서 자살은 ‘죽음’이지만, 우울증 환자에게 자살은 모든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인 셈이다. 우울증 환자 75%가 자살을 생각하니 그 심각성을 알 만하다.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자가진단법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척도로도 쉽게 체크해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우울한 사람은 인터넷에 들어가서 자가진단조차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심하게 우울한 사람은 전문가들이 찾아내서 진단해줘야 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는 대부분 ‘함께 모여 살아간다’는 점이다. 만약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게 된다면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 그러니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 ‘한국인 우울증 척도’를 개발했는데.
우울증 척도로 백척도, 해밀턴척도, 몽고메리척도 등이 있지만 한국인에 대한 양상을 소화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인의 문화적‧인종적 차이를 감안해 환자들의 증상을 모아서 문항을 만들었다. 이 척도를 가지고 환자를 진단하고 있으며, 다른 척도와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다. 이 척도를 중심으로 ‘맞춤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진단도 중요하지만 환자마다 서로 다른 환경과 증상을 어떻게 치료하느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 치료법과 예방법.
우울증 치료로는 약물치료‧집단치료‧인지행동치료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는 약물치료가 사용되는데, 이때 쓰이는 항우울제는 신경전달물질을 넣어주는 게 아니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울증은 낫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치료를 안 받는 경우도 많은데, 우울증 환자 80%가 치료를 받으면 완치가 가능하다. 사회적인 편견을 교육 등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치료보다 중요한 것이 예방이다. 가장 먼저는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면 좋다. 또 월급을 타면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5% 정도 떼어놓자.
우울증은 운전의 이치와 같다. 전문가를 내비게이션이라고 한다면 보조석에 앉은 사람은 가족이 된다.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 본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으며, 보조석에 앉은 가족은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해서 자책하거나 창피해하지 마라. 또한 혼자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전문가를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