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신앙직제의 향후 과제를 놓고 진보 개신교계가 머리를 맞댔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사연과 NCCK이 공동주관한 ‘21세기의 교회와 선교: 설교자를 위한 WCC 제10차 총회 주요문서의 내용’ 심포지엄이 열렸다. 심광섭 감리교신학대 조직신학 교수가 논평을 하고 있다(위). 오직예수선교단이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마지막 날 서울 명동성당 인근에서 가톨릭과 교황 제도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단체가 설치한 가톨릭 반대 현수막. ⓒ천지일보(뉴스천지)

가톨릭과 개신교 진보 측서 창립한 ‘한국신앙직제’ 논란
개신교 보수진영, 가톨릭 반대 극심… 비방 책자 살포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가톨릭과 개신교계 진보진영이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신앙으로 일치를 이뤄보고자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지만 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분위기다. 특히 부패한 중세 가톨릭에 반발해 개신교를 탄생시킨 마틴 루터의 사상을 강조하는 보수진영의 반발이 극심하다.

진보 측이 그동안 가톨릭과 화합행보를 꾸준히 펼쳐왔음에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보수 측 교회들은 지난 5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를 창립하자 태도를 바꿨다. 각 교회에는 가톨릭을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소책자가 비치됐고, 목회자들은 교인 단속에 한창이다.

한 보수 측 교회 예배당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황 정체알리기 운동연대’가 제작한 ‘가톨릭에 놀아나는 한국교회’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가톨릭과 바람난 한국교회’라는 제목으로 초판 됐던 소책자는 자체 집계 100만 부 이상 배포됐다. 이후 제목이 약간 바뀐 개정판이 등장했고, 전국 교회에 뿌려지고 있었다.

‘로마 가톨릭&교황 정체알리기 운동연대’는 소책자에 결의문을 게재하고 “로마 가톨릭교회의 비성경적인 행위를 비판한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어 올린 지 500년이 되어가는 지난 5월 22일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종교개혁의 깃발을 꺾어버린 사건이 발생했다”며 ‘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한국신앙직제)’ 창립을 맹비난했다. 이들은 가톨릭을 로마의 혼합종교라고 비판하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한국교회는 가톨릭과 (신앙면에서) 일치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 총신대 총장이자 대신대 총장을 지낸 정성구 박사는 지난 8월 일산 킨텍스 한국교회 대성회에 참석해 가톨릭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경적 기독교 신앙에 독극물을 탄 대(大) 이단”이라며 “로마 가톨릭은 기독교가 아니라 성경에 없는 하나의 유사종교”라고 비난하며 보수 측 입장을 대변한 바 있다.

◆보수, 교황 지위 가장 높을까 우려

보수 측이 한국신앙직제 창립에 특히 분노하는 이유는 신앙 부문에서의 일치뿐만 아니라 직제부문에도 일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제는 직무나 직위에 관한 제도를 일컫는 것으로 교직의 명칭과 편제, 구성에 관한 것이다. 이를테면 가톨릭에서는 교황, 추기경, 주교, 신부 등의 직제가 있고 개신교에서는 교단 총회장, 감독, 노회장, 지방회장, 담임목사, 부목사, 강도사, 전도사 등의 직제가 있다.

보수 측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직제를 일치시킬 경우 각 교단의 총회장 위에 교황이 위치하게 될 것이라며 교권을 빼앗길까 우려하고 있다. 운동연대는 책자를 통해 “직제를 협의한다는 것은 모든 직제를 가톨릭화해 목사를 신부로, 각 나라 교단 총회장을 주교로, 교단 총회장을 추기경으로 부르고 총회장 위에 교황이 자리 잡게 하는 사전작업이 아닐지 상당히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또 직제 일치를 통해 개신교와 가톨릭이 통합되진 않을지 걱정이 크다. 이들은 “먼저 직제를 통일시키면 가톨릭과 개신교의 거리감과 거부반응은 서서히 사라져 얼마가지 않아 대다수의 교회는 음녀 바벨론 종교의 통합을 굳이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보 “하나님 한 분이니까 ‘일치’해야”

반면 진보진영은 가톨릭과 하나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회의 분열이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2000년부터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한 ‘일치포럼’ 등을 통해 가톨릭, 정교회와 함께 다양한 주제를 놓고 신학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 노력의 결과로 지난 5월 한국신앙직제가 탄생한 것이다.

전철 한신대 조직신학 교수는 20일 열린 NCCK 주관 심포지엄에서 “하나님이 한 분이시고, 교회의 주인인 예수가 한 분이심을 증언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교회 일치의 여정 속에서 열매로 드러난다”며 “교회와 일치는 교회가 교회다움을 증언하는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개신교가 유감스럽게도 교회 일치보다는 교회 분열의 깊은 상흔과 유산을 갖고 있다고 진단하며 “세계교회가 그리스도교의 교회 일치에 관한 신학적, 예전적, 실천적 정체성을 어떻게 모색하고 있는지 주목하는 것은 분열과 교단 간 갈등으로 점철된 한국 개신교 지형에서는 매우 절실하고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개신교-가톨릭 ‘일치’는 숙제

현재로서는 진보진영의 의도와 관계없이 한국신앙직제의 활동이 보수 측을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태생에 얽힌 신학적인 가치관의 차이가 크고, 교권 문제까지 얽혀 매듭을 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일치’를 추진하기에 앞서 먼저 개신교 교단들부터 ‘일치’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를 위해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 상황에 대한 목회자와 교인들의 재인식이 요구된다.

심광섭 감리교신학대 조직신학 교수도 이날 포럼 논평에서 “다수 한국교회가 교회 분열을 역사적 ‘과오’가 아니라 ‘정당성’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교회의 정체성과 성장은 분열과 분리 혹은 다른 교회와 교단과의 차별성을 드러냄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화와 사귐, 만남과 협력의 개방성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며 한국교회에 대화와 소통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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