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우왕 3년(1377)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直指)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유산이다. 이 책은 고려 말에 국사를 지냈던 백운스님이 만년에 성불사(成佛寺)에 정처하며 팔만대장경의 경구가 될 만한 아름다운 가르침과 수많은 고승들의 언행을 모아 엮은 것으로 ‘직지심체요절’이라고 부른다. 즉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란 글을 줄여 ‘직지’라 한 것인데 이는 ‘참선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보면,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직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최고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인 구텐베르크 성서보다도 78년이나 빠른 것으로 말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다. 사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발명은 직지보다 훨씬 앞서 기록만으로 그 존재가 알려진 ‘고금상정예문’이라는 책은 구텐베르크보다 무려 200년 이상 앞서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가 처음 발견된 곳이 바로 청주 흥덕사지인데 흥덕사는 9세기경에 지어져 15세기 조선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졌고, 이 흥덕사지에 직지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곳이 청주 고인쇄박물관이다.

청주시는 이 직지를 기념하기 위해 2003년부터 격년제로 청주직지축제와 유네스코 직지상시상식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 역시 지난 10월 15~19일까지 고인쇄박물관 및 청주예술의전당 일원에서 직지가 발간된 1377년을 기념하고 직지의 창조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위대한 탄생’을 주제로 직지축제를 개최한 바 있다.

비단 직지축제뿐 아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며 출판기념물로 손꼽히는 팔만대장경 또한 그 위대함을 기념하기 위해 2001년부터 매년 4월 경남 합천군에서 ‘팔만대장경축제’가 열리고 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국보 32호) 역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팔만대장경축제는 큰 지역 행사이기도 하지만 불교문화행사로서 외국인을 위한 템플스테이와 전통사찰음식 체험, 팔만대장경 인경·판각·필사 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사실 직지나 팔만대장경은 불교문화의 산실이자, 불교를 대표하는 경서라고 할 수 있다. 직지축제나 팔만대장경축제처럼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기념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의 발전까지 도모할 수 있는 축제가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저 문화유산으로서의 직지나 팔만대장경을 기념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축제나 지역축제의 개념을 벗어나 먼저는 이들 축제가 불교의 경서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때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그 경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경서가 왜 기록이 됐는지, 그 경서를 기록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았을 때에 직지와 팔만대장경을 간행한 참뜻을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보이는 외관이나 규모 또한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참다운 경서가 될 것이며, 또한 세계에 길이길이 남을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기록유산이 될 것이다.

더욱이 종교를 가진 신앙인이라면,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경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려고 힘써야 할 것이다. 팔만대장경축제나 직지축제에 갔다 온 것으로 신앙의 깊이를 논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 기록된 뜻을 알고자 힘쓰는 것이 바로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라 할 것이다. 속이 꽉 찬 알곡처럼 말이다.

경서는 있으나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모른다면 무용지물이 아니겠는가.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경서는 액세서리가 아닌 꼭 알아야 할 내용이 담긴 신의 메시지다. 또한 경서 안에 약속이 기록되어 있음을 믿고,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 삼아 신앙을 한다면 작금의 시대처럼 종교계가 신뢰를 잃고 표류하는 배처럼 겉도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신앙인들 또한 경서에 기록된 것을 믿고, 그 뜻을 깨달아 그대로 행한다면 막연한 소망이 아닌 참 소망과 희망이 눈앞에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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