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약 35명의 건대 가드너(가드닝 활동자)들이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에 모여 버려진 자투리땅에 꽃을 심고 있다. (사진제공: 건국대 게릴라가드너)

꽃을 심는 청춘들이 모였다 ‘건국대 게릴라가드너’

[천지일보=김일녀 기자] 지난 5월 어느 봄날, 서울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 2번 출구 앞을 지나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 곳에 멈췄다.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몸살을 앓던 작은 공터가 해바라기 가득한 꽃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사철나무 서너 그루가 쓰레기더미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던 곳이었다. 평소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지나쳤고 그런 무관심조차 익숙해져버린 곳 중 하나였다.

하룻밤 새, 누가 이렇게 예쁜 화단을 만들어놓았을까. 누가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 의문과 동시에 해바라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건국대 게릴라가드너. 기특한 생각은 이들에게서 나왔다. 환경과학과 선배들부터 녹지환경계획과, 보건환경과학과 후배 등 30여 명이 모인 모임이다. 이들이 하는 활동은 ‘게릴라 가드닝(Guerrilla Gardening)’이다. 귀에 익숙지 않은 말이다. 공통점을 찾기 쉽지 않은 두 단어의 조합에 궁금증이 생긴다.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원예 전쟁’ ‘화초의 습격’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심 속 방치된 공터나 자투리땅에 남몰래 꽃과 나무를 심고 사라지는 일종의 사회운동이다. ‘총 대신 꽃을 들고 싸운다’가 모토다. 실제 최근 쓰레기 불법 투기 현장이 게릴라 가드닝을 통해 도시 정화효과를 얻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건국대 학생들은 분기에 한 번꼴로 활동하고 있다. 정기 모임이 잡히면 우선 저마다 후보지를 물색한다. 건대 주변에서 각종 쓰레기와 담배꽁초로 지저분해져 눈살이 찌푸려지는 곳이면 딱이다. 회의를 통해 후보지가 선정되면 활동 날짜와 어떤 꽃을 심을지 등을 정한다. D-day 하루 전, 학과 전용 비닐하우스에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각종 도구를 미리 빌려 놓는다. 그리고 당일 아침 7시께, 약속 장소에 하나 둘씩 모여든다. 그들은 쓰레기를 치우고, 삽으로 땅을 파서 흙을 부드럽게 한다. 그리고 준비해온 꽃을 심는다. 참여 인원이 적지 않고 자투리땅에 하다 보니 오래 걸리지 않는다. 1시간 안에 작전은 끝난다.

▲ 오수진 학생 (사진제공: 건국대 게릴라가드너)

지난 5월 작전을 펼친 건대입구 2번 출구에 작은 변화가 나타났다. 건대 게릴라가드너를 이끌고 있는 오수진(21, 여) 학생에 따르면 당시 꽁초나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줄었다고 한다. 또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얼마 전에는 비료 등을 만드는 회사에서 취지가 좋다며 지원 의사를 밝혀오기도 했다. 실제 모든 활동은 자율적으로 회비를 모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해바라기 꽃밭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취객들에게 짓밟혔고, 담배꽁초는 점점 쌓여갔다. 그래서 울타리를 쳤다. 하지만 이마저도 소용없었다. 결국 지금은 다시 앙상한 사철나무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건대 주변 두어 곳의 자투리땅에도 꽃을 심어 놨는데, 주변 건물에서 공사를 하면서 폐자재 등을 꽃밭에 옮겨놓거나, 공사장에서 생긴 시멘트물을 화단으로 그대로 흘러들어가게 내버려 두기도 했다. 지금도 꽃을 심었던 흔적만 남아 있다.

오수진 학생은 이처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점이라고 했다. 물론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긴 했다. 모임 참여 인원을 몇 개 조로 나눠 2주마다 돌아가면서 관리를 하고 있다. 화단에 떨어진 쓰레기도 줍고 물도 준다. 특히 건국대 주변 위주로 활동을 하고 있다. 학교 주변이니 만큼 오며가며 관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다. 꽃이 심겨진 화단을 보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은 물론, 함께 보살피고 가꿔가는 것이다. 그래야 활동 자체도 더욱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학생은 가로수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점검이 필요하고, 길거리에 쓰레기통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은 우선 학과 교수님께 자문을 구하기로 했다. 효과적인 관리 방법은 무엇인지, 생존력이 강하고 도심 정화에 알맞은 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지혜를 얻을 생각이다. 모임이 체계적으로 자리잡도록 하는 것도 올해 목표 중 하나다.

꽃을 심을 수 없는 겨울에는 집주인 몰래 주택 문 앞에 화분을 놓아두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화분에는 꽃을 소중히 여겨달라는 쪽지도 넣을 생각이다. 또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 앞에서 게릴라 가드닝 관련 설문을 실시해 시민들이 간접적으로나마 활동에 참여토록 할 계획이다. 설문 내용을 활동에 반영하면 시민들이 좀 더 관심을 갖고 동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 지난 9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어느 빈터. 13명의 가드너들이 모여 쓰레기를 치우고, 원통형 콘크리트에 다양한 동물 모양의 그림도 그려 넣었다. 이날 주변 주민들은 ‘젊은이들이 꽃을 심는다’며 기특해하셨고, 빈터가 꽃밭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매우 좋아하셨다는 후문. (사진제공: 건국대 게릴라가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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