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직하(稷下)에 학자들을 초빙해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를 열고 중흥을 이룩한 제위왕(齊威王)은 즉위 초에 매일 주색에 묻혀 살았다. 한(韓), 위(魏), 노(魯), 조(趙)가 제의 변경을 침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이 자기 이름을 밝히며 접견을 요청했다.

“성은 추(騶), 이름은 기(忌)라 하며 제나라 사람입니다. 제법 거문고 소리를 압니다. 대왕께서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하니 거문고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허락을 받은 추기는 거문고의 줄을 어루만질 뿐 타지 않았다. 위왕이 까닭을 묻자, 추기는 거문고를 내려놓으며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신이 알고 있는 것은 거문고 소리에 대한 이치입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은 악공(樂工)의 일입니다. 거문고 소리의 이치를 들으신다면 왕의 분노를 살까 머뭇거립니다.”

위왕이 들어보자고 청하자 추기는 말을 이었다.

“‘금(琴)’은 ‘금(禁)’과 통합니다. 음탕하고 사악한 것들을 금하고 모든 것을 올바르게 돌린다는 뜻입니다. 옛날 복희(伏羲)가 거문고를 만들 때 길이를 3자 6치 7푼으로 하여 1년의 366일을 본땄으며, 넓이는 6치로 육합(六合)을 상징했습니다. 앞은 넓고 뒤는 좁은 것은 귀천을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위는 둥글고 밑은 네모난 것은 하늘과 땅을 상징합니다. 줄이 5개인 것은 오행을, 큰 줄은 군주를, 작은 줄은 신하를 말합니다. 소리의 완급은 청탁을 표현하니 탁성은 너그럽되 절제가 있어서 임금의 도를, 청성은 깨끗하나 어지럽지 않으니 신하의 도리를 말합니다. 첫째 줄은 궁(宮), 둘째 줄은 상(商), 셋째 줄은 각(角), 넷째 줄은 치(徵), 다섯째 줄은 우(羽)라 합니다. 주의 문왕과 무왕께서 각각 한 줄씩을 더했는데, 소궁(小宮)과 소상(小商)이라 합니다. 군주와 신하가 은혜로써 뜻을 합친 것을 의미합니다. 군신이 믿으면 정령(政令)은 화합하니 치국의 도는 거문고의 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거문고의 이치에 통달했으니 음에도 정통할 것이오. 한 곡 부탁합니다.”

“신의 업은 거문고의 도리를 깨닫는 것이라 거문고에 정통한 것은 당연하지만, 대왕의 업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인데 어찌하여 치국의 도리에 정통하지 못하십니까? 대왕께서 나라를 어루만지기만 할 뿐 다스리지 않으시니 신이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타지 않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신이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타지 않으면 대왕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릴 수 없듯이 대왕께서도 나라를 어루만지며 다스리지 않으시면 백성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없습니다.”

크게 깨달은 위왕은 추기를 자기 침소의 오른쪽 방에 머물도록 했다. 다음날 아침 위왕은 목욕을 하고 추기를 불러 치국의 도리에 대해 물었다. 추기는 다음 사항을 권했다.

‘술을 절제하고 여인을 멀리할 것. 나라의 일은 실리와 명분을 위주로 운영할 것. 충신과 망신(妄臣)을 구분할 것.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면서 싸우는 기술을 가르칠 것.’

추기자가 제의 상국이 되자 순우곤(淳于髡)이 찾아와 군주를 모시는 법, 수레바퀴를 잘 굴리는 법, 아교로 나무를 붙이는 법, 갖옷을 깁는 법, 금(琴)과 슬(瑟)의 화음을 맞추는 법에 대해 토론했다. 추기는 그것을 모두 정치의 요체로 받아들여 간단하게 응대했다. 순우곤은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은유적으로 5가지를 말했는데 저 사람은 모두 그 말에 부합하는 대답을 했다. 참으로 큰 인물이라, 내가 따를 수 없다! 머지않아 후(侯)에 봉해질 것이다.”

1년 후 추기는 성후(成侯)로 봉해졌다. 어려운 말보다 쉬운 비유가 가장 강한 설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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