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역사지식 그리고 일반소양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요즘 대기업들이 신입기자선발에 내건 한결같은 주문이다. ‘인문학이 대세’라는 말이 빈 말이 아님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대기업 취업준비생들에겐 인문학과 소양을 갖추는 것이 필수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지금까지 한국의 교육열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부럽게 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교육률을 자랑해 왔다. 하지만 그 교육의 결과로 경제 성장은 OECD 33개국 중 10위권 안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자살률 1위, 행복지수 꼴찌라는 불명예스런 딱지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결국 교육의 본질을 벗어난 교육의 왜곡이요 모순 덩어리였음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단지 성장을 위한 기능 위주의 암기식 내지 시험 합격용 교육은 ‘나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인간성 상실’의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자본주의가 갖는 순기능 외에도 자본주의의 한계와 모순이라는 역기능에도 눈을 돌리게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고도 봐 진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역기능적 교육환경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찾아온 게 바로 인문학의 중요성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인문학이란 도대체 뭔가. 한마디로 ‘자아(自我) 곧 나의 발견’이다. 나아가 ‘우리의 발견’이며 ‘인간의 발견’을 위한 가르침이다. 그 장르에는 역사·철학·문학·종교 등을 포함시킬 수 있다. 나와 우리와 인간을 발견할 수 있는 인문학적 교육이 배제된 기능적 교육은 현실과 같이 성장과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고, 사회의 전반적 부정과 부패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돼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교육의 본질은 인문학적 교육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 인간성을 회복함으로써 인간의 가치를 찾고 누리게 하는 데 있음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우리의 선진들은 이러한 교육의 중요성을 늘 강조해 왔으며, 심지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백년을 내다보고 세우는 큰 계획)’라고까지 했다. 즉, 교육은 미래를 보는 계획이니 ‘교육은 곧 미래’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문학이 배제된 교육은 현재는 잘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민족의 선각자 단재 신채호 선생은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바로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혀 바로 알게 해야 한다”며, 역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역사가 중요한가. 자신의 역사를 모르거나 잊은 민족은 그와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생각해 볼 것은 우리 민족은 유사 이래 931회의 외침을 받아 왔다. 422년 전 1592년부터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과 일제 식민치하를 빼고는 모두 북방(중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아왔음을 그야말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 사연을 간직한 민족이 얼마 전까지 국정교과에 역사교육과정을 배제시켜 왔다는 사실은 참으로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간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거울과 경계가 된다고 어느 경서에서까지 강조하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역사를 잊은 것이 다가 아니라 미래를 부정하는 미련하고 미개한 나라요 그 국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뿐만이 아니라,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이라는 허울 좋은 얘기는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역사가 주변 국가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벌레 먹어 왜곡되고 만신창이가 돼 버린 왜곡의 역사인 줄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역사교육을 하면 뭐 할까’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어느 때보다 와 닿는다. 그야말로 생각의 총체적 변화가 시급한 때를 맞이한 것이다. 그 생각의 변화는 곧 인문학적 사고로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며, 그 같은 변화를 통해 나와 우리와 인간을 재발견함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종교다. 인문학적 소양의 근본에는 바로 종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언급했듯이 변화의 시작에는 바로 ‘생각’이 있는데, 그 생각은 정신이요 나아가 영성이요 종교성이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들 하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그 영성이 떠나간 지 오래며, 오히려 미물만도 못한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그 떠나간 영성을 되찾는 것이 인문학의 완성이며, 잊었던 나를 찾고 우리를 찾고 인간을 찾아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종교의 회복운동이며 종교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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