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모 대한성공회 주교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일까요? 이 물음은 종교인과 철학자뿐만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질문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삶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만이 삶에서 진정한 자유와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문제를 기피하지 말고 죽음의 문제를 명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캐나다의 케인 교수가 인도하는 집단 상담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참석자들에게 깊은 심호흡을 시키며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게 인도했습니다.

그녀는 사라 브라이트만의 ‘Time to say goodbye’라는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깊은 내면의 세계에서 듣는 그 노래는 무언지 모를 커다란 힘으로 나의 감정을 흔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케인 교수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여러분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단 5분뿐입니다. 머릿속에 누가 떠오릅니까? 그들에게 이제는 안녕이라고 말할 때라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느낌이 듭니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상상하면서 새롭게 뭔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까?”

나는 그때 진실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집단 상담을 마치고 눈을 떴을 때 훨씬 성숙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대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후회와 아쉬움을 느낍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많은 상처를 주었고, 왜 사소한 일로 다른 사람들을 그토록 가슴 아프게 했던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을 마치지 못한 후회와 아쉬움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을 때에는 아무리 후회하고 아쉬움이 남아도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오는 경험을 한다면 그는 인생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며 살 것입니다.

만일 이런 경험을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부쩍 성장할 수 있을 텐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나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상상해 보는 것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훈련은 혼자서 할 수도 있고 집단 상담에서 여럿이 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상상 속에 잠겨 있다가 눈을 뜨면 나에게 남아 있는 삶의 시간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시간도, 다투었던 사람들과 화해할 시간도, 또 의미 있는 일을 해볼 시간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순간을 상상해보면 자신의 삶이 더욱 새로워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중해지며, 또한 자기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과 중요한 일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붓다가 말했습니다.

“모든 발자국들 가운데 코끼리의 발자국이 최고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들 가운데 죽음에 대한 명상이 최상이니라.”

죽음에 대한 명상은 어떤 무서움이나 혐오감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에 대한 명상을 함으로써 죽음과 친해지고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죽음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만이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명상은 궁극적 치유를 위한 명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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