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연평도 해역에서 또 한 번 남북 함정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 경고 사격만을 주고받아 피차에 피해는 없었다고 공식적으로 설명이 됐더라도 교전은 교전이다. 교전은 크거나 작거나 당장이 아니면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더 큰 싸움으로 비화될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적당히 퇴각해서였던지 우리가 자제해서였던지 또는 그 둘 다가 원인이었던지 간에 싸움은 짧게 끝났다. 그것을 다행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다 해서 가볍게 볼 사안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 나라 군대나 무력 사용은 엄격한 통제를 받는 것이므로 의도되지 않은 무력 충돌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번 도발에도 분명히 그 사악한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와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긴 하지만 이번 도발의 충격파는 저들의 위험천만한 도발 습성의 연장선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 와 닿는 느낌만은 과거 다른 때와 많이 다르다. 즉, 놀라움보다는 혼란을 안겨주었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리 판단력을 가진 나라 안팎의 모든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저들은 불과 도발 3일전인 지난 4일 정권 실세 3인방이 불쑥 인천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북한군 총정치국장이며 노동당 군사위원회 부주석인 황병서 차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이 그들이다. 국가원수도 아니면서 황병서의 색안경을 낀 경호 인력은 일부러 티를 내는 것처럼 국가원수의 경호만큼이나 요란했다. 김정은의 신임이 극진하지 않으면 누리기 어려운 특권일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인천에서 우리 측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국무총리를 비롯한 우리 정부 관계 요인들이 우리의 수도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동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 정부를 들썩거리게 한 셈이다.

우리가 ‘통일대박론’으로 통일을 지향해 가면서 놓치지 말고 살려내야 하는 것은 토라진 저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기회와 불씨라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던 상황에서 어떻게 느닷없이 북 정권 실세들의 방문이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의 돌발성은 방문을 마치고 돌아서자마자 도발한 저들의 불가예측성과 표변성만큼이나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또한 그들을 맞을 때 보인 들떴던 당국자들의 표정과 다분히 풍긴 과공(過恭)과 혼선의 뉘앙스(Nuance) 역시 그러하다. 불쑥 찾아온 듯해 보여도 저들의 짧은 방문은 치밀한 노림과 기획이 있어 보이지만 우리 측의 대응은 순발력을 발휘한 것에 비해 그동안 견지해온 대북관계 기조상의 일관성과 상통하는 맥을 읽어내기가 솔직히 어려웠다. 이 점은 정부가 가닥을 잘 잡아 설명함으로써 국민들의 혼란을 해소해줘야 한다.

알려지기론 저들은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관을 구실로 입국 허가를 받아 내려왔다. 그 말 그대로를 믿는다면 그들의 인천 방문은 북 정권 실세들의 화려한 외출이며 특권적 관광이다. 저들은 우리 대통령과의 면담이 가능하다는 우리 측의 제의까지도 거절하면서 인천에만 머물렀다. 따라서 그들은 필시 대한민국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인천을 방문한 것이며 그것도 아시안게임 폐막식을 참관한 것이 된다. 만약 저들의 진짜 본심이 인천아시안게임을 핑계로 본격적인 남북관계의 국면 전환을 이루어보자는 것이었다면 청와대 방문 제의를 얼씨구나 받아들였을 것이며 활동 공간과 접촉 범위를 한층 더 넓혔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들이 진짜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만을 보려고 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시안게임 참관은 핑계이므로 참관 자체는 건성이었을 것이고 참가국들에게 북 정권의 존재성도 과시하고 우리 정부 당국자들을 만나 이것저것 떠보고 간도 보고 여론도 살피고 국론 분열도 꾀해보려는 다목적 노림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청와대 방문도 거절하면서 인천에서 우리 정부 요인들로 하여금 그들을 찾아오게 만든 것은 우리 정부에 아쉬울 것 없고 매달릴 것 없는 척 대내외에 과시하는 약세 입장의 허세였다고 봐진다. 그런 정도를 헤아리지 못할 우리 정부는 아니겠지만 그들이 북 정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비중이니만큼 가벼이 대접해 보낼 수 없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사실 우리 정부 관계자들과 그들 사이에 비밀스럽고 의미심장한 밀담이 오갔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건 저렇건 이번 인천 접촉이 남북관계의 긍정적인 국면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들은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자마자 그런 기대에 무참히 재를 뿌렸다. 참으로 북은 속성이 불안정하고 못 믿을 체제라는 것을 새삼 실증했다. 체제가 민주적 시스템으로 운영되지 않고 1인에 대한 복속과 복종으로 돌아가는 체제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그런 체제는 1인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변덕이 심할 수밖에 없다. 어떻든 그들은 인천 방문을 통해 우리 정부가 거둔 수확은 막연하고 애매한 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벌써부터 남북 정상회담 조기 개최, 5.24 조치 해제, 금강산 재개 등을 놓고 분분한 의견대립과 이념 진영 간의 갈등을 유발해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들은 지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 모른다.

북은 사방의 출구가 막혀있는 왕따의 처지다. 혈맹이라던 중국과의 각별했던 관계는 정상적인 국가의 관계로 식어가는 중이며 러시아와 일본, 유럽에 대한 접근도 여의치가 않다. 그렇다 해서 그들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어 찾아온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너무도 나이브(Naive)한 것이 된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확실히 알며 동시에 확실히 예측 가능한 것은 이번 연평도 도발에서 보듯 그들 체제의 불가예측성 뿐이다. 그들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것을 경각심의 기저에 깔고서 도발에는 도발의지를 꺾어 놓을 만큼 단호히 대처하는 한편 또 다른 돌발행동에 침착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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