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국의 왕자이자 국제석유투자회사의 대표인 만수르를 패러디한 KBS 2TV ‘개그콘서트’의 ‘억수르’가 큰 인기다. 한국의 유명한 스타들도 ‘억수르’ 앞에서는 “거지야?”라는 소리를 듣는 등 외국인 부자의 모습을 풍자하는 장면이 웃음을 준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소리가 개그 속 웃기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카타르도 석유 판 돈, 오일머니로 부자가 된 ‘만수르’ 나라다. 반세기 전만 해도 수도 도하에 변변한 건물 하나 없던 별 볼일 없는 나라였지만,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 달러가 넘어 세계 두 번째다. 땅 밑에는 천연가스와 석유가 가득 차 있고 나라 곳간에도 돈이 가득하다. 왕자들은 세계적인 톱스타들을 안방으로 불러 생일파티를 열고, 웬만한 스타들도 진짜 ‘거지’ 소리 들을 수 있다.

카타르의 넘쳐나는 돈은 스포츠 행사에도 흘러든다. 2006년엔 아시안게임을 유치했고 2022년엔 FIFA월드컵을 개최한다. 뜨거운 사막의 나라에서 월드컵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일었지만 오일머니로 FIFA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월드컵 유치를 성사시켰다. 실력 있는 외국 선수들을 귀화시켜 국제 스포츠 대회에 출전케도 한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아프리카와 유럽 출신 귀화 선수들 덕분에 재미가 쏠쏠했다. 아시안게임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비난이 일었지만, 꿩 잡는 게 매라고, 문제 될 게 없었다.

귀화 선수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존재했다.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자국의 국력과 군사력을 뽐내기 위한 무대였다. 도시국가들은 올림픽 출전 선수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우승한 선수들은 두둑한 상금을 받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살았다. 이 때문에 요즘의 프로 선수처럼 전문적으로 올림픽 출전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었고, 국적을 바꾸어 출전하기도 했다. 귀화 선수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아테네에서는 우승 선수들에 대한 포상을 법으로 정해 놓고 공정성 시비가 일지 않도록 했다. 올림픽에서 우승할 경우 500드라크마(당시 그리스 화폐단위)를 주었는데, 당시 아테네 시민의 1년 반 임금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아테네 시민은 상류층 지배계급으로 1드라크마면 하루 생활을 유지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국가적인 포상제도 덕분에 다른 나라의 우수한 선수들을 자국 시민으로 귀화시킬 수 있었고 이것이 올림픽을 휩쓴 원동력이 되었다.

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에게 국가에서 포상금을 주고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베풀어 주는 것도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올림픽에서 우승하면 성벽에 일부러 큰 구멍을 뚫어 입성하게 하거나 공식행사 때 가장 높은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올림픽 우승을 꿈꾸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1등을 하면 좋은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1등만 기억하는 야박한 세상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