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가 개신교 대표 연합단체라는 위상을 완전히 잃었다. 1989년 출범 이래 자체 집계 1200만 명이라는 소속 교인수를 자랑했지만, 2012년 한교연 분리 이후 한기총 탈퇴 러쉬로 주요 교단 교인만 800만 명 이상 줄었다. 끝없이 추락하는 한기총을 진단하고 한국교회의 주류를 이룬 장로교단의 특성을 고찰해본다.

금권선거·이단논란 등 온갖 추문에 이미 ‘만신창이’

한기총 설립자들 신앙 ‘최악’
천황신에 절하고 군부는 찬양

매머드급 교세로 영향력 막강
교권장악 위해 금권선거 만연

신흥세력 견제하려 이단 규정
갈등·분열 회원 탈퇴 줄줄이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100여 년 동안 이어진 한국교회사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대표격으로 부각돼 활동해온 기간은 고작 20여 년 남짓이다. 그러나 한기총이 남긴 족적은 상당히 화려하다(?).

한기총은 대형교단들을 회원으로 두고 보수 정치권과 합세해 교계 대내외적으로 한국교회 대표를 자처하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곧 수많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됐다. 곪았던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터져 표면으로 드러났고, 결국 회원 교단과 개신교계는 물론 사회의 지탄까지 받으며 만신창이가 됐다.

사실 한기총의 태생부터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는 예고된 시나리오나 다름없다.

◆장로교단 중심 창립, 초기 급성장

1989년 창립된 한기총은 개신교 최초의 연합기구가 아니다. 이미 1924년 창립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있었다. 그러나 친정부 성향의 보수진영은 사회 개혁을 부르짖는 NCCK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 196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 사건으로 이를 반대하는 진보진영과 지지하는 보수진영으로 개신교계는 입장차가 확실해졌고, 보수 측은 NCCK를 견제할 새로운 단체 결성을 모의했다.

1989년 12월 28일 장로교를 중심으로 36개 교단, 8개 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강남중앙침례교회에서 한기총이 창립됐다. 이후 진보 성향인 NCCK와 보수 성향인 한기총은 서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로 정착됐다.

고작 10개 교단에 불과 했던 NCCK와는 달리 한기총은 2012년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분리되기 이전까지 한국교회 양대 대형교단인 예장합동‧통합을 포함해 67개 회원교단을 거느리는 등 매머드급 교세를 형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기총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신사참배한 한국교회, 독재 군부도 찬양

한기총의 정치성은 태생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정치세력을 등에 업고 막대한 권력을 행사했던 목회자들이 한기총 설립의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목회자들의 신앙 상태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있다.

1980년 8월 6일 개신교계 보수 지도자들이 서울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이다. 성결교 증경총회장 정진경(신촌성결교회) 목사는 전 위원장을 위한 기도에서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두환을 찬양하는 기도를 했고, 큰 반감을 샀다.

같은 성결교 소속 23명 목사들은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한경직 정진경 문만필 조향록 강신명 목사 등 23명을 반란방조혐의로 대검에 고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장로교단 한경직 목사는 한기총의 최초 대표회장을 맡았으며 정진경· 조향록 목사 등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한경직 목사는 일제 강점기 당시 장로교단의 신사참배 결정을 이기지 못하고 천황신에게 절해 한국교회의 변절된 신앙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던 인물이다.

◆금권선거·이단해제로 갈등·분열

자기교단의 신앙조차 지키기 못한 장로교는 80년대 5공화국 초기 도리어 ‘이단정화’라는 명목으로 신흥종단인 장막성전, 타 교단 등을 이단으로 정죄하며 교권을 장악했다.

이 같은 장로교 교권의 명맥은 한기총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단 규정은 한국교회를 위협하는 수단이 되기에 충분했다. 한 번 이단으로 지목되면 교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소위 ‘왕따’를 당했다. 한기총과 회원교단들은 신흥 교단의 성장을 경계하며 교계 언론을 앞세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단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이단 논쟁’이 한기총을 분열시킨 큰 원인 중 하나가 됐다는 점이다. 한기총은 주요 교단들이 이단이라고 지목한 다락방을 영입한 예장개혁을 회원교단으로 인정했고,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목사에 대한 이단 해제를 선언했다.

또 이단 논란 외에도 한기총은 2011년에는 길자연 목사의 금권선거 논란으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았다. 당시 한 목사는 일명 ‘10당 5락(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 10억 원을 쓰면 당선되고 5억 원을 쓰면 떨어진다)’을 주장하며 한기총 돈 선거가 이미 2003년부터 시작됐다고 폭로했다. 십여 년 동안 만연된 금권선거가 뒤늦게 수면으로 드러나 교계 내외에 큰 충격을 줬다.

◆회원 탈퇴 ‘우수수’

이에 예장통합을 비롯한 회원교단들은 한기총의 교권다툼으로 인한 금권선거, 부정부패, 이단해제 등을 문제 삼아 지난 2012년 한교연을 세워 따로 떨어져 나갔다. 이 때문에 67개 회원교단을 갖고 있던 한기총은 25개 교단을 잃었다. 당시 한교연에 속한 교회수는 한기총보다 1.3배, 분담금은 1.2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기점으로 한기총의 교세는 급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예장고신이 탈퇴, 올해 정기총회에서는 예장합동이 탈퇴하는 등 주요 대형 교단들이 전부 빠져나갔다. 교세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을 쳤다.

한기총은 순식간에 절반 이상의 세력을 빼앗아간 한교연과 앙숙이 됐다. 한기총은 한교연의 주축 세력인 예장통합의 이단대책위원장인 최삼경 목사를 이단으로 지목하며 이단 해제 논란을 잠재우려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또 최 목사는 이미 한기총 이대위에서 주요 이단 규정 활동을 했던 전력이 있어 오히려 한기총의 오락가락 이단 규정에 대한 비판의 불을 지폈다. 홍재철 한기총 대표회장은 사면초가에 몰렸고, 한교연과 뒤늦게 통합하고자 손을 내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찬바람뿐이었다. 결국 자신은 사퇴하고 만신창이가 된 한기총을 이영훈 여의도순복음총회장에게 넘겼다.

◆‘부패 온상’ 한기총 해체 목소리 높아져

교계 인사들과 일부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기총에 대한 해체 목소리가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한교연 분리 당시 교계 16개 단체로 구성된 기독인네트워크는 “한국교회와 사회 구성원들에게 외면 받는 한기총은 해체함이 마땅하다”고 성명을 냈다. 이들은 한기총의 문제가 비단 한기총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임을 시사하며 한기총 해체를 촉구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